정하연 작가 인터뷰 上 : 작가 정하연, 인간 정하연
 정하연 작가 인터뷰 下 : <신돈>이라는 우주의 창조주 정하연
정하연 작가 인터뷰 下 : <신돈>이라는 우주의 창조주 정하연
"남의 불행이 자꾸 보여요.... 그래서 큰스님도 신돈이 이쁜 거에요."

편집부(editors@dramamob.com)

[2005-11-29 오후 5:41:05]

 

드 : 저 같은 경우는 사극을 잘 몰랐는데, 이번에 신돈을 보면서 사극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제가 드라마몹 말고도 다른 매체에 기고를 하는데, 이 작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구요. <신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하나하나를 모두 이야기 하자니 독자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고 어려운 드라마로만 받아들이지 않을까.. 사실 의미 이전에 <신돈>은 참 재미있는 드라마인데요.

정 : 그래서 어깨가 무거워요. 괜히 복잡하게 쓴 게 아닌가 해서... 제가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께요, 모 신문사의 기자가 방송비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신문사가 좌지우지 할 때에요. 제가 맨 처음 <아내> 할 때였는데, 그 때 프로가 완전히 죽어서 광고가 한개 들어왔어요. MBC가 4~50% 할 때 KBS시청률이 10 몇 % 이렇게 할 때였어요. 광고가 딱 하나 들어왔으니까 오죽했겠어요? 그때 모기자가 친군데 어떻게 도와줄까 라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써달라고 쭉 말해 줬어요, "자 너 나 시키는대로 써라.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울고 불고 하는 저질 드라마냐? 본처와 첩이 나와서 남편 하나 두고 싸우는, 이런 패륜 드라마, 드라마 같지도 않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부끄러워 하라"는 등등 해서 욕만 잔뜩 말해 줬어요. (폭소) 그 친구가 그말 듣고 막 웃더라구요. 진짜 그렇게 써도 되냐고, 그렇게 써 달라 했더니 진짜 그렇게 썼어요. 근데, 8회 나갈 때 보니까, 아침에 광고가 다 붙었어요. 정신없이 욕을 했더니... 시청률은 그렇게 올리는 거구요.(웃음)

드 : 지문을 쓰는 스타일은 작가들 마다 다 다르잖아요? 김수현씨 같은 경우에는 A부터 Z까지 꼼꼼히 지적해 주는 스타일인데, 그에 비해서 선생님 선생님의 지문은 연기자들에게 여지를 남겨주는...해석의 여지를 남겨주어 연기자들을 끌어내는 스타일의 지문을 구사하시던데요.

정 : 네, 저는 연습을 잘 안 가는 편인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작가가 가면 연출도 영향을 받고, 배우들도 작가 눈치를 보거든요. 유명한 작가분들은 자기 틀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아무개 작가류, 아무개 작가틀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됐는데, 저는 작가가 연기자들을 통솔하는 건 별로 아니라고 보거든요. 저는 연기자들이 제 대본을 보고 생각하고 재창조하는 걸 원해요. 그러다 보면 (제 의도와 달리)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반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가서 효과를 볼 때도 있어요. 아니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캐릭터의 특성을 살려내서 살아서 펄펄 용솟음 치는 캐릭터를 만들어 낼 때도 있죠.

그래서 그런지 제 지문은 기본적으로 허전한 편이예요. 꽉 짜임새 있고, 타이트 한 걸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작가들의 몫이 있다고 봐요. 배우들이 못해봤자 얼마나 못하겠어요? 저와 같이 작품을 한 뒤에 5년 정도 지나면 그 배우도 연기가 늘어나지 않겠어요? 그러면 5년 후에 배우가 자기 작품을 보고 뭘 깨닫지 않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안 되는 배우들에게 지문에 적혀있는 걸 그대로 연기하라고 하면, 흉내 내려고 하잖아요. 그럼 불행해 지죠, 꼼꼼히 적혀 있는 지문을 그대로 흉내 내다 보면 자기도 잃고, 작품도 버리게 되죠. 그냥 (배우가) 판단하게 기본적인 거만 주면, 자기들이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연기자도 생각하게 되고, 연출도 고민하게 되죠. 소설이 아닌 이상 세세한 묘사로 배우를 작가의 틀에 얽어맨다는 건 아니라고 봐요.

드 : 명덕태후 지문을 보면서 (드라마몹) 편집진들이 많이 웃었어요. 대본을 보면 ‘캬악 웃는다.'로 나와 있는데, 연기자 분께서 기가 막히게 연기하세요. 소름이 쫙 돋잖아요. 캬악 웃는다.. 그런 지문은 처음 봤거든요.(웃음)

정 : 그렇게 써놓으면 자기 웃고 싶은 대로 웃겠죠.(웃음)

드 : 명덕태후 그분이 나오면 머리가 아플 정도에요. 그 웃음소리 하며, 단순한 시어머니의 강짜가 아니잖아요. 몽고에 대한, 몽고 여인에 대한 한이 서려있는 아주 복합적인 캐릭터...

정 : 사실 명덕태후와 공민왕은 정이 없어요. 같이 산 적이 없거든요. 사람들이 왜 저러나 그러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급증이 있어서 빨리 알고 싶어 하잖아요. 근데 그러면(빨리 알려주면) 드라마가 천해지는 거예요. 완전히 까발려진 드라마에 익숙해 져서... 느껴야 되는 것도 말로 다 설명해버리고, 소리가 안 들리면 드라마를 안 보는 시대가 됐어요.

드 : 그냥 대사만 가지고 그러면 완전히 라디오 드라마가 되는 거죠. 그래도 이번 <신돈>과 같은 경우엔 기존의 선생님 사극과 다르게 템포가 빠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정 : (웃음) 제가 좀 미쳤죠. 제가 요즘 멜로 드라마를 안 써요. 예전엔 멜로 드라마를 많이 썼는데, 간지러워서 안 써요. 사실 나이가 들었을 때, 젊었을 때 '사랑해요' 라는 의미와 40대 '사랑해요' 가 의미가 다르거든요. 20대 감정으로 '사랑해요' 라고 쓸 수가 없으니까 멜로드라마와 멀어질 수 밖에 없어요. 사극도 ‘전하 망극하옵니다'라고 써야 하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것도 쑥쓰러워지더라구요. 그쪽은 오히려 좀 젊어진다고 그래야 할까요? 또 사극이라는 것도, 전통 사극에 다른 대면(對面)이 있을 거 아니냐. 그쪽으로 표현해 보자.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세세하게 다 전달하는 게 아니라 더 현대적으로 보여주자, 또 영상이라든가 스케일도 크게 해서 해보자. 보여지는 것을 그걸 다 이해해야 하냐? 꼭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봤거든요. 인물을 놓고 봤을 때 인생의 여러 단면들을 보여주고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그건 시청자의 몫으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한번 해보자. 하고 시작했죠.

드 : 그럼 젊은 층을 노린다거나 시청자층에 대한 계산이 있으셨던 건 아니구요.

정 : 제가 나이가 들었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내 또래도 보겠지 했는데, 내 또래는 딴 데 가 있더라구요. <이순신> 보고.. 그런 게 진짜 사극이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그럴 만도 하잖아요? 이순신이 전함을 끌고 가 차곡차곡 왜놈들을 때려 부순다. 얼마나 재미있고. 그나마 옛날에 사극을 보던 사람들은 역사를 이해하려 하고, 이걸 현실에 적용하고 생각하고 했다구요. <용의 눈물>만 해도 5룡이니 하면서 봤잖아요. 한명회도 2인자의 모습이 어떻다. 참모의 모습이 어떻다 했는데, 그랬던 우리 세대니까. 이렇게 또래 남자들을 잡고, 여자는 노국공주가 나와서 (멜로로) 이어질 때 그때 잡자. 어차피 여자는 쉽게 안 잡히니까. 그런데, 아무것도 안 잡히고(웃음)... 어디서 엉뚱하게  망둥이가(주-10,20대 시청자들)...(웃음) 얼마나 유쾌한 겁니까? 잘하면 방송국에서 안 먹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뭐, 기분은 좋아요.(웃음) 앞으로 MBC에서 일을 안 맡기겠지만...

드 : 젊고 새로운 흐름을 좋아하는 젊은 시청자들이 원한다는 건, 그거야말로 방송사의 미래잖아요? 다시 일을 안 맡기는 일은 없겠죠?

정 : 다른 데서 맡기겠죠. 대신 다시는 그렇게는 쓰지 마라...(폭소)

드 : 조금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가령 요즘 사극에서는 처음엔 어린 시절이 나와서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이라든가 앞으로 무얼 이룰 것인가라든가 얘기를 다 풀어주거든요.

정 : 저는 어차피 사극의 호흡이 길기 때문에, 처음에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가자니까 간지럽더라구요. 그래서 어린 시절은 들어내고, 어려워도 이렇게 시작하자. 했죠. 어려워도 한 달이고 두 달 지나면 반응이 오겠지 했는데, 그런데 전혀 반응이 없잖아요. 나이든 사람 반응 없죠. 아줌마 반응 없죠. 사실 당황스럽더라구요. 4회 나가니까(방송국에서) 다 자르고 왕 즉위식 하자고 하는데, 미쳤냐구. 그러면 10프로가 봐 주는 거도 다 날리고 어디로 갈 거냐고?

네티즌이나 드라마몹에서 극찬을 안 했다면, 간부들도 흔들렸겠죠. 그런데,. 계속 그렇게 주장하다간 무식하다고 욕 먹을 수도 있고 해서 도망가는 거에요.(웃음) 사실 KBS 같으면 걱정을 안 해요. 그쪽은 좀 낙천적이라 작품이 좋으면 됐지, 시청률이 좋으면 됐지, 이도 저도 아니면 거기 나오는 누구가 연기가 좋지... 정 그래도 안 되면 막을 내리는데, MBC나 SBS는 그게 안 되더라구요. 막을 내려요. 제가 며칠 전에 이런 얘기도 했어요. 시청률은 하루 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좋은 작품은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있다. 채널 한번 돌아가면 돌아오는데 2,3년은 걸린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확실히 10프로라도 유지해라. 그러면 희망이 보이는데... 지금부터 흥행물을 유지하면, 삼류 방송이 되는 거 아니냐....

드 : 젊은 층이 신돈의 '하하하하하'만 좋아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 안에서 의미를 찾는 걸 좋아해요. <신돈> 안에는 많은 의미들이 맞물려 있으니까요. 정치사극이 펼쳐지면서도 그러나 조카의 시신을 보면서는 마치 맥베드의 한 장면처럼 울고... 다양한 코드들이 맞물려 있어요.

정 :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보면 글쎄요...이 친구가(문하작가) 개그콘서트 보면서 웃는 거 보면서, 왜 웃냐? 왜 웃냐? 물어보거든요. (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자기가 원하는 걸 골라서 스스로 즐기는 거 같아요. 그런데 기존의 드라마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신돈이 보여준 게 있나봅니다. (웃음) 방송사에서 보면 저는 패군지장(敗軍之將)이거든요? 시청률로는 참패고. 하도 시청률, 시청률 그래서 제가 20% 넘으면 몽둥이를 들고 MBC를 갈 거라고(웃음) 그런데, 돌아가는 판을 보니까 15%도 힘들 거 같아서 ‘이거 취소다.' 라고 했죠(웃음)

드 : (시청률) 탄력 받는 거 같은데요?

정 : 제가 점을 잘 믿는데요. <신돈> 시작하기 전에 유명한 보살님한테 찾아갔어요. <신돈>이 어떨 거 같냐고...내가 보기엔 대박인데 그랬죠.(웃음) 그런데 반응이 별로 신통치가 않아요. 대박이 나긴 나는데, 금년에는 안 난다는 거예요. 첫눈 올 때 올라서 내년 되어야 대박이 난다네요. 그런데 그 보살님이 다 맞거든요? 그래서 맨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라 하고 빌었죠(웃음)

드 : (웃음)올해는 겨울이 빨리 와서.

정 : 올라가고 있죠.(웃음)

드 : 사극 쪽 작가들이 조선시대 사극을 쓸 때,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을 원 텍스트로 사용하잖습니까? 그런데 요즘 사극이 탈조선화 되면서 <신돈> 같은 경우에도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텍스트는 어디서 찾으십니까?

정 : 예전에 박종화씨의 다정불심을 봤었는데, <신돈>하기 전에 다시 볼까 했다가 덮었어요. 역사는 날짜인데, 저는 자료에 함몰되지 않으려고 해요. 솔직히 공민왕 때의 자료를 믿을 수 있을까요? 조선이 들어서고, 숭유억불을 내세우는 과정에서?(정도전이 ‘불씨잡변'을 직접 쓴 것 처럼 유교의 잣대를 가지고 고려를 왜곡되게 그렸다. 이때 ‘신돈'의 이미지가 요승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연대기에서 사건이 진행된 시간만 뽑았고, 여기에 인물만 집어넣었죠. 인물들 잘 보면 아시겠지만 기록에 나와 있는 거랑 반대도 있어요. 내 머릿속에 있는 기철만 봐도 역사에 나와 있는 기철과는 좀 다르죠. 신돈이 끝나면, 어디 교양단체에서 강의 같은 거 부탁할까봐 겁나요.(웃음) 그런 면에서 보면 퓨전 사극이라 봐야 하지만 그런 건 아니고, 60년을 살면서 가져온 역사관과 제가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인간상을 가지고, 사람들을 그려보는 거죠. 정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끌고 가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엉터리는 아니에요(웃음).

드 : 신돈을 보면 조광조의 향기가 나는데요.

정 : 그렇죠. 우리나라에 유림이나 유교에 관련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조광조를 잘못 그렸다간 방송국 날아간다니까요.

드 (웃음) : 정암(靜庵 : 조광조의 호)이신데...

정 (고개 끄덕이며) : 이 너무도 반듯하게 알려진 사나이를 그린다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까딱 잘못하면 방송국 날아가게 생겼고(웃음) 제가 생각한 대로 움직일 방법이 없어요. 한 1/3까지는 그럭저럭 가겠는데, 조광조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고정되어 있으니까 조금만 잘못 그렸다간... 한계였죠. 아쉬웠어요.

드 : 그래서 그 아쉬움을 <신돈>으로 푸는 면도 있으시겠어요.

정 : 그게 또 조광조 하고 똑같은 문제에 걸리더라구요. 조광조는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반듯함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신돈은 또 고려를 말아먹은 요승이란 이미지로 굳어 있잖아요?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르게 그리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드 : 조광조의 향기가 넘어왔다고 느낀 것 중 한 가지는 초선 캐릭터입니다. <조광조>의 초선이 <신돈>의 초선으로 넘어온 것도 같아요.

<조광조> 1996년 방영된 정하연 작가의 52부작 대하사극이다. 조선조 중종시절을 배경으로, 산림유생의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정암(靜庵) 조광조가 중종과 의기투합, 중종반정의 공신들과 대척점을 이루고 개혁(?)에 나섰던 모습을 그려냈다. 18부까지의 드라마 <조광조>는 나름대로 참신한 시도로 보였으나, 그 뒤로는 역사 속의 조광조 그대로 그려졌다. 이후 김재경PD의 <여인천하>에서 다시 조광조가 등장하지만 역시 평범한 모습으로 박제된 영웅으로만 묘사되었다. 학계 일각에서는 조광조의 개혁이 너무도 확대포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조광조의 경우 그 개혁의 완성을 도학(道學 : 성리학)에서 찾았기에,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라 할 수 없었고, 그 개혁의 목적도 조정내의 훈구 대신, 공신들을 제거해 그 자리에 사림파가 앉아 도학이 이끄는 조선을 만들려 했었기에, 개혁이라기보다는 정권 창출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신돈>과 <조광조>의 닮은꼴이라면, 둘 다 개혁을 꿈꿨고, 왕과 의기투합해 권력을 이양 받아 일정부분 개혁을 진척시키다가, 어느 순간 다시 훈구세력(귀족세력)과 협상을 통해 토사구팽의 수순을 밟았다는 점이다. 이런 토사구팽의 수순에는 신돈과 조광조의 비대해진 권력(?) 혹은 민심의 쏠림이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도 비슷하였다. 둘 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황에서 앞을 향해 달려가는 도중 호랑이 등에서 떨어졌고,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던 것이다.

드 : 공민왕이 조카를 죽인 데 대한 원죄의식을 가진 인물로 나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사극에서는 사람 하나야 우습게 죽이고 하는데요. 공민왕은 고뇌하는 나약한 예술가같이 그려지구요.

정 : 그래서 권력자가 못되는 거죠.

드 : 그래서 비극이 되는... 보통 사극들은 어떻게 보면 약육강식의 정글세계로 나왔는데요. 공민왕의 고뇌는 뭐랄까.. 작품의 질을 문학적인 의미랄까요, 한단계 높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정 (웃음) : 그렇게 좋게 봐주시면 좋은 거구요(웃음). 근데 방송사에서는 이놈의 공민왕은 왜 이렇게 왔다갔다 하냐고 한마디 했는데...(웃음)

드 : 선생님 사극을 보면, 기존의 사극과는 달리 정치 사극을 하면서도 꼭 여성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시는데, <왕과 비>의 인수대비, <장녹수>, <명성황후>, <신돈>의 노국공주까지, 여성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또 개인적으로도 강한 여성상을 좋아하시는가요?

정 (웃음) : 그런 여자들을 좋아합니다. 좋더라구요. 그리고 여성의 시각으로 보는 건, 좀 더 리얼해 진다고 할까요? 인간의 냄새가 난달까요. 여성의 눈으로 보면 더 살아나거든요, 그 시대의 모습들, 사극의 냄새가... 여자의 눈이 더 섬세하니까.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구요. 그러고 저는 조금 여성적인 시각이 좋아요. 제가 좀 여성적인가 봐요.

또, 제가 좀 고리타분하거든요? 희곡 쓰던 그런.. 그래서 일단 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사가 아니에요. 대사 자체가 복선이고.. 한데 그런 식으로 사극을 하다간 어렵거든요. 그런데 여성이 하면 그런 대사들도 말랑말랑하거든요. 서정적으로 말랑말랑 하고... 그런 점도 있어요.

드 : 선생님 멜로 쓰실 때 감수성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거군요?

정 (웃음) : 요즘은 징그러워서...

드 : 여성적인 면도 있으시고, 젊은이같은 면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인터넷은 자주 하세요?

정 : 드라마몹에 가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죠. 막히거나 하면 한 번씩 들여다보려고 해요. 부지불식간에 시청자들을 의식하게 되고 그러는데, 그러면 주변에 물어봐요. 변했냐? 틀어졌냐? 애초의 <신돈>의 색깔이 좋아서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드 : 디시인사이드란 사이트에도 <신돈>의 팬들이 많은데요.

정 : 막 지들끼리 욕하고 그러는 데 말이죠? 거긴 아주 놀랬어요. 내가 그 사람들의 상상력 1/10만 따라가면 작품을 정말 잘 쓸텐데...옛날에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거 쓸 수 없었던 게 요즘은 다 되잖아요? 그리고 재미있구요. 거기서 자극을 받아서 내 상상력을 최대한 열어보려고 합니다.

잠시 정하연 작가가 나간 사이 브레이크 타임. 문하에 있는 최대복 작가와 정하연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드 : 정하연 선생님이 사이트 어디어디 가세요?

최 : 다 가세요.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몹, 디씨, 저희가 하는 사이트도 있구요.

드 : 굉장히 많이 보시네요.

최 : 선생님 글 안 쓰실 때에는 인터넷에 내내 계세요. 저희 쪽 홈페이지도 자주 가시고... 원래 관심이 많으셨는데, 타자만 안 쓰시지 다 해요.

드 : 홈페이지 운영하는데 있어서 힘드신 점이라던가...

최 : 저번에 저희 쪽에 글을 한번 다 올렸는데... 기황후에 관한 글인데, 다시 내렸어요. 저희가 해 봐서 아는데 이런 거 올리면 꼭 시비를 거는 사람이 등장하거든요(웃음). 드라마적인 거와 역사적인 거는 분명 차이가 있는데... 그 역사적인 팩트라는 것도 이쪽 저쪽이 다르거나 틀린 것도 많거든요.

드 : 드라마 할 때마다 시비가 많이 붙나 보죠?

최 : 드라마쪽으로 시비가 붙는다면 괜찮겠지만, 역사 쪽으로 물고 늘어져요. 그것도 아주 지엽적인 부분으로 말이죠. <명성황후>때 할아버지 한 분이 또 계속 그러셨는데, 이런 게 하다보면 진흙탕 싸움으로 끝이 나잖아요? 그렇다고 응대를 안 하자니 그렇고, 하자고 하니 그렇고...

드 : 이덕일씨와의 논쟁도 있었죠.

최 : 그 분께서는 그 분 나름의 역사적 진실을 말하신 거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의 시선으로 수양대군을 보신 거거든요.  

드 : 그때 당시 정하연 선생님이 바라본 수양대군의 당위성이 조선이 개국된 지 겨우 60년이었던 시점이라, 어린 왕이란 존재가 자칫 잘못해 왕권의 약화, 이어지는 왕조 자체의 전복으로 생각했다는... 그런 해석이었죠?

최 : 그랬었죠.

드 : 저희 입장에선 오히려 그래서 평하기가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워낙에 다른 사극 작가 분들과 스타일도 다르고, 인물들이 모두 심리가 치열하게 그려지거든요. <신돈> 같은 경우엔 결정판이라고 할까?

최 : <장녹수> 할 때부터 선생님을 뵙는데, 선생님 장점이 그게 맞아요.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물 중심이라서 매일 보는 사람들은 재미있는데 어느 날 문득 본 사람은 재미가 없어요.(웃음) 어느 날 문득 한 장면만 보면 정신병자 같죠. 그래서 (신돈이) 좀 힘든가 봐요. 곁에서 보면, 선생님 작품 속의 인물들은 누구나... 그 내면이 복합적으로 그려지거든요. 저도 단순해서, 선생님 만나기 전까지는 조선왕조에 대해서 잘 몰랐구, 아 저 놈은 나쁜놈, 저 놈은 착한 놈 이라고 딱 고정된 이미지로만 봐왔죠. 그러다가 선생님 곁에서 눈을 좀 뜨게 됐죠.

이때 정하연 선생이 다시 돌아왔다.

드 : 역사적 해석이 상당히 독특하신데, 그 독특한 해석을 한마디 대사에 압축해 보여주시는 걸 즐겨하시는 것 같습니다. <장녹수>에서 연산군을 표현 했던 말이 장녹수의 대사 중에 나오는데, ‘전하는 두려워하는 사람은 죽이시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죽이지 않습니다'란 게 생각납니다. <왕과 비>에서는 문종이 ‘난 효도 밖에 할 게 없었다.'라는 대사가 기억납니다. 그 한 마디로 그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걸 보여주시곤 하는데...

정 : 기억해 주시니 감사하죠. 저는 수없이 시도를 하고 있는데, 뭐랄까? 절해고도에 무전기 하나 달랑 들고 조난된 사람이 무전기를 붙잡고 계속 떠드는 느낌이랄까? ...이런 반향을 만나기는 힘들거든요(웃음). 저는 희곡으로 글을 시작해서 좀 못된 근성을 가지게 되었어요. 방송국에서는 이 못된 근성을 버려야 성공한다고 욕을 하는데... 작가가 그런 맛으로 사는 거지. 나쁘게 말하면 멋을 부리는 거죠.(웃음) 이것도 말의 예술인데, 함축적이지 않으면 시정잡배가 쓰는 말하고 뭐가 다르겠어요? 그래도 작가인데 그래서 계속 해 보려고 시도하는 거죠. 그 말 한마디를 하려고 드라마 60분을 쓰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데...

드 : 이번에는 또 주린 개를 잡아먹는 것이 자비심이란 대사가 있었죠.

정 : (웃음)

정하연 작가의 대본을 보면, 대사에 중첩된 의미를 부여하거나 함축적인 의미를 담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런 함축적인 의미부여가 곧 그 작품의 주제와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장녹수>의 경우는 1990년대 초 중반, 사학계 일각에서 한참 반향을 일으켰던 ‘연산군 재평가' 운동에 방점을 찍는 대사로 당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1995년 KBS에서 방영된 <장녹수>는 이전에 한국 드라마, 영화에서 보여지던 연산군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로 연산군을 그려냈다. 당시 정하연 작가는 모정에 굶주린 왕의 모습 뿐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즉 그가 일으킨 몇 번의 사화는 한 미치광이 왕이 일으킨 피의 축제가 아니라, 성종 시절부터 지나치게 비대해진 신권...그 중에서도 간쟁(諫爭)을 담당하는 3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대한 압박을 통해, 왕권을 강화해 보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는 것이다.  

드 : 대학 시절 극예술연구회에 계셨었죠? 그 때문인지 연극의 향취가 강합니다. 신돈하고 원현이 같이 여행을 가는 것도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라든가 그리스 신화의 느낌이 나요. 갖은 모험을 하면서 지옥으로 여행을 떠나는..

정 : 그게 정말 돈이 있었으면... 그 부분도 다 해보고 싶었는데... 더 해야 하는데 못한 건데, 그걸 자꾸 무협처럼 난다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덜 창의적인 거에요, 우리 민족이. 그래서 요즘은 우리 젊은 세대들이 맘에 들어요. 쌍욕을 잘해서 그렇지(웃음), 얼마나 개성이 강해요? 지금 요 세대가 천방지축으로 날라 다니는 건 우리 민족이 희망이 있다는 거예요.

드 : 선생님도 고집하시는 배우가 있잖습니까? 대표적으로 유동근, 정보석씨 같은 분들이 그런 분들인데, 이번 같은 경우엔 갑자기 신인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원현 역의 오만석씨도 그렇고...(웃음) 김진민PD 말로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뽑았다는데...

정 : 원현이를 김진민이가 데려왔는데, 사진은 평범한데 직접 보니까 평범하지 않아서 가보자라고 결정했어요. 그런데 잘 하더라구요.

드 : 노국대장공주는요?

정 : 서지혜도 생판 신인이니까 자신도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겠죠. 그 친구한테 반한 거는 다른 애들은 역을 가지고 흥정을 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노국공주가 누군지도 모르고 와서는 스케쥴 이야기 하고, 페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거 참, 그런데, 서지혜라고 데려 왔는데, 사진보다 별로였어요.(웃음)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얘는 죽기 살기로 할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걔랑 나랑 두 가지 이유가 맞아 떨어졌어요. 걔는 신인이니까 큰 역에 대한 욕심이 있을테구, 죽기살기로 덤벼들지 않겠어요? 나는 그런 갈증이 필요한 거구. 그렇다면 눈 부릅뜨고, 에너지를 다 뽑아내봐라...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감독은 농담인 줄 알았어요. 알았어요, 하면서 가더니, 정말이예요? 라고 되묻는데... 그러면서도 후회했어요.(웃음)

드 : 1회 때 연기 보면 좋았죠. 진실한 뭔가가 있거든요. 점점 연기가 안정되는 것 같아요.

정 : 볼수록 그런 생각은 나더라구요. 매력이 있다. 노국공주가 다 잘 할 필요가 있겠냐? 케케묵은 연기 보다는 열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실제로 열정이 보이구요. 그러다 정 안 되면 빨리 죽여 버리면 되겠지 하고 시작했죠. (일동 웃음) 근데 회수가 올라 갈수록 연기가 붙는 게 보이더라구요.

드 : 약간 어색한 거는 외국인이라는 설정으로 커버...(웃음)

정 (진지) : 저는 요근래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은 얼굴은 처음 봤어요. 그렇게 확 띄는 얼굴이 없었어요. 그저께, 어저께, 왔다갔다 하는 배우들 보면 헷갈리거든요. 그 얼굴이 다 그 얼굴로 보이는데, 당차게 해요.

드 : 촬영 현장에서 보면, 다들 포스가 느껴지더군요.

정 : 원현이도 이러쿵 저렁쿵 하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내겠어요?

드 : 아버지 이야기하던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죠.

정 (고개 끄덕이며) : 광기도 있구요.

드 : 손창민씨 같은 경우는 선생님이 너무나 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 : 손창민이 한테 미안한 거는... 손창민이 연기 잘하는데, 언론에서 말하는 게 말도 이상하게 한다. 연기도 어색하다 했는데, 손창민이가 하는 연기는 처음 우리가 짰던 것 그대로예요. 뭘 진지하게 바라보는 듯하지만 사실은 감추고, 호탕하게 웃지만 그 웃음 뒤에는 이 시대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세상에 대한 변화를 꿈꾸기도 하고, 다른 인생을 살려고도 해 보는...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한마디로 혼란에 빠져 있잖아요. 세상에 냉소를 보내는 거죠. 손창민이 한테 네가 어떤 아픔, 절규할 때 느끼는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당분간 그대로 가야한다. 창민이는 자기는 욕먹어도 좋다고 가겠다고 그러더라구요. 요즘 배우들은 미니시리즈 하나 뜨면 편하게 살잖아요. 그런데 제가 꼬셔가지고 미안하죠. 하지만, 손창민은 꼭 해야 해요. 제가 손창민이 꼬실 때 그랬거든요. 배우로서 너무 아깝다. 너는 진짜 배우가 될 수 있는데, 그 자리에 설 수 있는데, 왜 젊은 애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치대고 있느냐. 한데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였는지 내가 달려드니까 거절하지 못하고 뛰어들게 됐죠(웃음). 내가 사실은 연산군 할 때도 손창민을 따라다녔는데...유동근이 차려 먹었죠.(웃음)

드 : 손창민씨는 워낙 탄탄한 배우니까요... 마스크도 좋고...

정 : 얼굴 좋죠.

드 : <신돈>보다보면 빠져들어서, 전성기 때 톰 크루즈 때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했어요.(웃음)

정 : 대배우가 될 배우고, 얼굴도 좋죠(웃음).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기는 그만두라고 했어요. 처음에 신돈으로 여러 사람을 생각했는데... 최민식이도 넣었거든요. 근데 전화를 안 받더라구요(웃음). 근데 그쪽은 나이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손창민은 가능성도 크고 에너지도 넘쳐나죠.

드 : 신돈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많아요. 보다보면 너무 슬프고 애잔하달까요. 신돈의 아픔이랄까? 그 상처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오는 거 같아서...

정 : 신돈이 느끼는 막연한 아픔은... 제 젊은 시절 느꼈던 아픔과 똑같아요.

드 (웃음) : 개혁을?

정 : 정치적인 게 아니라...(웃음) 젊은 시절의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가지는 막막함이라고 할까요? 현실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갈 길도 보이지 않고, 그런 데서 오는 답답함이라고 해야 할까? 말을 바꿔서 개혁이라 하는데, 남의 아픔을 그냥 스쳐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제가요, 안 보려는 남의 불행이 자꾸만 보여요. 옛날에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젊은 부부가, 너무 가난한 부부죠. 애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가는 거에요. 시장에서 산 싸구려 옷인데 풀을 먹여서 최대한 멋은 부렸는데... 그게 막 보이잖아요. 그들이 손 잡고 버스타고 가는데, 나도 버스 타는 주제에 그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나서 버스에서 막 울었어요.

신돈의 경우도 마찬가지인거 같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남의 고통이나 불행을, 지는 아파하잖아요. 지가 노비의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거에요. 남의 아픔과 남의 불행을 같이 아파하는 모습, 큰 스님도 그런 아픔을 느꼈던 거고, 그래서 신돈이 자꾸 이쁜 거에요. 그걸 보고 아파하는 신돈이.

드 : 선생님은 지금까지 정치사극을 주로 해 오셨지, 대하사극 그러니까 <태조왕건>이나 <불멸의 이순신>같이 선 굵은, 한마디로 말해 전투장면 나오는 작품과는 거리를 두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앞으로의 <신돈>의 행보를 보면, ‘조일신의 난' 나오고, 김용도 한바탕 난리를 칠 테고, 기철과의 싸움도 남아 있는데, 이런 난리 시리즈를 어떻게 그리실 생각이십니까?

정 : 그렇게는 못 그릴 거에요. 이환경 작가처럼은... 생리적으로 못해요. 전혀. 저는 내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는 성격이라, 제가 통제가 안 되는 건 원고가 안 넘어가는 스타일이라, 난리가 났는데도, 한쪽에서는 난리가 났는지 모르게 넘어가는...아마 그런 식으로 그려내지 않을까 싶어요.

드 (웃음) :명성황후 때처럼 인서트로?

정 (웃음) : 인서트는 아니지만, 사람이 몇 백 명이 나와서 난리나는 그런 거는 아니라는 거죠.

드 : 연출도 타이트 한데요. 불필요한 장면 없고, 억지로 울도록 음악 깔고, 폼내려 카메라 돌리고 그런 것도 없구요.

정 : 그런 여유를 제가 대본에서도 안 줬고, 거기서도 안하고... 젊은 사람이 하는데 그게 무슨 짓이에요? 그러면 안 되죠. 드라마보면 끝날 때 까지 주구장창 울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 울지 말자고... 그 안에서 몇 분씩 울어야겠어요? 울고 싶으면 끝나고 혼자 울어야지...

드 (웃음) : <신돈>은 냉정해요. 눈물 한 방울이 살짝 흘러 내릴듯 말듯 할 때 갑자기 하하하하하하- 하고 웃어 버리니까.(웃음) 너 울긴 왜 울어? 하고 놀림 받은 기분 될 때도 있어요.

정 : 간단해요. 사실은 배경은 슬프지도 않은데, 배우가 나는 슬퍼요 하고, 음악 깔고, 돌리면 다 울어요. 그런데 우리 왜 울지? 그런다니까요.

드 (웃음) : 울 준비를 하고 드라마를 보니까요.

정 : 김진민은 그런 거 안하죠.

드 : 안하시죠. 가급적이면 레일을 안 쓰려고 하시는 거 같고. 사실 시청률이 좀 더 나와주면 좋은데요.

정 : 이게 하나 다행인 게, MBC가 덫에 걸려서,(웃음) 돈을 많이 들여서 세트 지어 놨죠. 연출도 잘하고 있죠. 배우들도 좋은 배우 모두 모아서 넣었죠. 작가도 이제까지 폭삭 망한 건 없고, 이 상태에서 빼고 마시고 할게 없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MBC가 덫에 걸렸다. 이건 MBC 문제다, 라고 우겨요(웃음). 뉴스도 8%인데, 10%면 되지 않냐. 너희들이 문제다 그러죠. 연출하고 그렇게 말 하자고....(웃음) 보는 사람도 알짜만 보고 있다. 기죽지 마라 기죽지 마라 하면서 가고 있죠.

드 : 그래서인지 촬영장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구요.

정 : 좋죠?

드 : 다들 활기차고 화기애애하고.(웃음)

정 : 연출도 자기 하고픈 대로 찍고 있으니까...

드 : 팬들이 걱정했던 게 혹시 조기종영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정 :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가 부양책을 쓰죠. 시청률 올릴 만한 거 넣고 하면서... 하나 MBC가 반성해야 하는 건 작품들이 다 안 되고 있잖아요. 이건 기회거든요. 뭐 하나 되고 뭐 하나 안 되면 방송사도 뭐가 잘못된 건지 종잡을 수 없으니까 처방을 못 내리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전부 다 안 되고 있거든요. MBC 정체성이 뭔가. MBC 칼라가 뭔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이제 기회인 거죠. 이 이상 나빠지겠냐? 릴렉스 하게 풀어 가면 MBC 드라마가 살 길이 보이지 않겠어요? 그래도 요즘은 단념이 되나 봐요. 그럼 길이 반드시 보여요. 인위적으로 시청률을 올리려면 안돼요. 이번 기회에 MBC 드라마가 자기 색깔을 찾고, 그 색깔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옛날 드라마 왕국 MBC로 부활하는 거죠. 상황이 이러니까(웃음) 그래서 제가 잘 버티죠.

드 : 김진민 PD가 자랑하던데요? 정하연 선생님이 스타일리시 하고 잘생기셨다고...

정 (웃음) :지가 못생겨서 그런거죠... 못생겨서 깡패 같은 놈이 떡하니 나와서 연출을 하겠다니까, 전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었어요. 지금 봐도 신기해...(폭소)

드 : 이거 써도 될까요?(웃음)

정 : 사실인데 뭘. 맨 처음에 연출을 한다고 찾아왔어요. 자기가 연대 나왔대요, 연극반 출신 후배라고... 그래서 한번 만나줬죠. 깡패같이 생겨가지고, 행동하는 것도 딱 그래요. 막 이렇고 저렇고 막, 말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연대 나왔어요? 연극반 출신이시죠?'라고 몇 번 물었거든요.

드 : 네가 내 후배다 하는 걸 환기시켜 주시기 위해?(웃음)

정 : 네, 그걸 상기시켜 줬는데, 그러면 '네 맞습니다' 그래놓고는 또 막 그러는 거예요.(웃음)

드 : 근데 이걸(외모에 대해) 쓰면 김여진씨가 화를 낼 텐데...

정 : 내가 김여진이 한테도 말했었어요. 불쌍하다고.(폭소)

드 : 외모보다는 연출가로서의 재능에...(웃음)

정 : 내가 보기엔 그건 아닌 거 같고...(웃음) 걸린 거죠. 원래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걸리잖아요.  

드 : 선생님도 젊었을 때 여자들이 많이 따랐을 거 같은데...

정 (의미심장한 표정) : 저는 젊었을 때 재미나게 살았어요. 옛날 저희 때는 여자를 사귀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 여대생은 웬만한 집안이 아니면 여자를 대학에 안 보냈어요. 일단 대학에 들어온 여자는 장학금을 받거나, 집안이 받쳐주거나... 근데 남자들은 다 가난했어요.(웃음)

드 (웃음) : 생계를 위한....

정 (웃음) : 남자들끼리 모여서 뭘 하겠어요, 주머니 돈도 한 푼도 없고...

드 (웃음) : 생계형 연애를 하셨군요.(웃음)

정 (웃음) : 어떡하든 여자에게 잘 보여야 해서...그래야 먹고 살 수 있었던 거죠. 그때는 도시락에 밥만 싸와서는 학교에서 파는 국물에 말아 먹고 그랬는데, 이것도 못 먹는 애들이 태반이었어요. 담배를 한 갑 사더라도 이건 숨겨 두고, 남들한테 얻어 태웠어요. 그러다 더 이상 구걸할 수 없게 되면 그 때 한쪽 구석에 몰래 숨어서 한대씩 빼서 피고...이런 상황이다 보니, 여자들에게 잘 보여야 했죠. (웃음)당장 생계가 걸려 있으니까... 그래서 제가 맨날 여자 만나고 그러다가 여성적이 되었나 봅니다.

드 (웃음) : 위험수위를 넘어섰는데요? 사모님이..

정 : 그 땐 그랬는데요, 음... 그 때는 다 그랬어요. 사실인데요 뭐, 그 때는 다섯명을 좋아했는데...

드 : 다섯 다리를요!(폭소)

정 : 한명 하고만 하다간 생계가 위협받죠. 그래서 계속해 예비를 두고, 교대해 가면서 만났는데, 한번 만나면 2주 정도 만나다 끝났어요. 그 당시엔 길을 가다가 남자친구들이 부르면, 여자친구한테 야 잠깐만 기다려... 이러고는 남자 친구들 따라갔거든요, 만약 안 가면 학교에서 사람 취급을 못 받아요, 매장이니까.(웃음) 저 새끼는 여자한테 미쳐서 친구도 선배도 몰라보는 놈이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럼 여자 세워놓고 잠시 기다려라, 하고 불려가면, 그냥 없어지는 거죠. 여자는 서서 기다리고... 그런 거 두 번만 하면 그냥 까이죠. 근데 그런 와중에도 여자들에게 끝까지 한 애들이 있어요. 끝까지 해낸 애들이 있어요. 대단한 거죠.

드 (웃음) : 선생님은 그걸 못해서 채이셨다는?

정 : 그래서도 채이고, 장래희망도 없으니까 채이죠. 당시 하고다니는 행색도 행색이지만, 도무지 미래가 안보이잖아요?

이렇게 3시간 조금 넘은 인터뷰가 지나갔다.

정 : 오늘은 저 혼자 실컷 떠들었고, 다음 기회에 또 못다한 이야기 합시다. 다음에 제가 맛있는 걸 사드릴 테니까...(영수증을 집어드신다)

드 : 이건 저희가...

정 : 아니, 이거 내가 시킨 게 너무 많은데, 케이크도 시키고 해서...

드 : 이미 저희가 계산 마쳤습니다.  

정 : 김진민의 말에 의하면 이 회사는 아주 가난하다고 하던데...

드 (웃음) : 그때 말씀드렸는데, 아니라고...(웃음)

정 : 한겨레신문사랑 똑같구나. 거기 기자들 만나서 커피 시키면 잽싸게 달려가 커피값을 내는데, 내가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한겨레 기자 라는 거 다 아니까 그러지 맙시다 라고 하는데 드라마몹도 그런 겁니까? 어쨌든 이러면 내가 미안한데, 다음 기회에 내가 밥이든 술이든 살테니 다시한번 봅시다.   ⓒ호모 드라마쿠스-dramamob.com

 

 정하연 작가 인터뷰 上 : 작가 정하연, 인간 정하연
 정하연 작가 인터뷰 下 : <신돈>이라는 우주의 창조주 정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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