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연 작가 인터뷰 上 : 작가 정하연, 인간 정하연
 정하연 작가 인터뷰 下 : <신돈>이라는 우주의 창조주 정하연
정하연 작가 인터뷰 上 : 작가 정하연, 인간 정하연
[지금도 마로니에는]이 제일 좋아요....
옆에서는 "정말 이렇게 쓸거요?" 라는데 알게 뭐냐?

편집부(editors@dramamob.com)

[2005-11-29 오후 4:11:53]

 

드라마몹이 드디어 <신돈>이란 우주의 창조주 정하연 작가를 만났다. 정하연 작가는 46년 황해도 출생으로, 춤추는 가얏고(MBC), 장녹수(KBS), 아내(KBS), 왕과비(KBS), 명성황후(KBS), 명동 백작(EBS) 등등 많은 작품을 썼고 현재 <신돈>(MBC)을 집필 중이다.

이하 정하연 작가는 정. 문하작가인 최대복 작가는 최. 드라마몹의 박현정, 이성주 에디터는 드.

 


드 : 반갑습니다. 사실 듣기로 선생님께서 저희 드라마몹을 가끔 보신다고 들었는데요.

정 : 제가 놀랜 거는요. 드라마 비평이라는 게 신문에서 평균 시청률 떠들어 대는 거 빼고는 평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잖아요. 전문적인 비평은 아예 생각도 안했고, 업계에 대한 시각이나 전문용어에 대한 이해 같은 것도 없었는데, 그런데 (드라마몹은) 전문성을 가지고, 지적을 하더라도 근거를 가지고 평을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니까, 평다운 평이라고 할까? 우린 우선 참 좋구요. 야 어디서 갑자기 이런 게 태어났냐? 그래서 제가 김진민한테 물어봤어요. 이 양반들 어떻게 운영하냐 라고 그러니까 뭐라뭐라 말하더라구요. 좋은 일 하시는 거구요.

시청률이 좀 모자라더라도 좋은 작품 쓰고 실험적인 걸 하려는 젊은 작가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방송사한테는 구박덩어리거든요. 방송드라마가 문학은 아니어도, 그래도 문화라고 생각하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작가들이 있는데, 도태되어 버리거든요. 이런 작가들을 밀어주고 하시면 그 작가들에게도 살길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요즘도 보면, 신문 같은 데선 어쩌니 저쩌니 욕을 하면서도 매일같이 인기 있는 드라마들을 선전해 주고 있거든요. 그러니 이 작가들이 신문에도 도움을 못 받고.. 한데 여러분들이 나서주면 힘이 되어주는 거고, 늙은 저도 힘을 받는 거고...

드 : 시청률 때문에 아무래도 신경은 좀 쓰이시죠? 2003년 <아내> 리메이크작은 야인시대와 붙었는데도 15%를 유지하셨었는데요.

정 : 무슨 놈의 나라가 연속극에서 50% 나오는 게 있을 수 있어요? 아니 모든 사람이 다 밥먹고 그거만 보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이런 이야기는 방송사 가서 안하죠 (웃음) 일 안들어 오니까.

50프로라는 시청률을 따져보면 2천5백만이 봤다는 소린데,  10년에 한번 씩 있을 법한 사건을 매번 하라고 그러니까 종사자나 모두 다 압력을 받는 거예요. 어디 가서도 방송작가라고 하는 게 창피할 때도 있어요. 뭐 가끔은 우쭐대게 될 때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하면 시청률 안 나오는 놈이 변명한다고 할 테지만.(웃음)

드 : 사극을 좋아하다보니 선생님 작품을 다 보게 됐습니다.

정 : 처음부터 사극은 아니었어요. 나이 들면 사극하게 돼요.(웃음)

드 : 그러고 보니 <욕망의 바다>라는 작품이 생각나는데, 현대극이지만 사극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는데요.

 

<욕망의 바다> (1997년, KBS)

56부작 기업드라마, 제일그룹의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난 유동근이 미국에 가서 망나니 생활을 하다가 한국으로 귀국, 어머니 강부자와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제일그룹의 경영권을 빼앗고, 기업을 경영해내는 이야기이다. 당시 문민정부 시절의 기업드라마답게, 재벌개혁과 비자금 이야기 등등 그 전의 기업 드라마에서는 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담겨져 있었다. 유동근의 열연이 인상 깊은 작품이다.  


정 : 그 작품은, 원래 신은경을 캐스팅 했었는데 갑자기 사건이 터져서 신은경이 매장되는 분위기였어요. 시청자 위원회에서는 공영방송이 그럴 수 있냐고 난리를 치고, 바꿔야 하게 된 거예요. 그때 내가 생각했던 신은경 역은 완전한 요부였죠. 애 낳고, 집안을 쏙 망하게 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당장 내일모레 미국 가서 찍어야 하니까, 일단 '비자 있는 배우'를 우선으로 찾게 된 거예요. 캐릭터가 흔들리게 되니까 이게 결국 정치니 권력암투니 해서 극단적으로 가게 됐죠. 근데 요즘 재방송 하는걸 봤더니 나름대로 재미있더라구요? (웃음) 내가 쓸 때는 정말 재미없었는데, 다시 보니 재미있더라구요. 그때는 워낙 신은경, 신은경, 신은경 해서... 내가 좀 광적인 데가 있어서 집착이 심해요, 별 비위를 다 맞춰가며 신은경을 꼬셔서 가자고, 가자고 했는데 일이 틀어져 버리니...내일 미국 가야 하는데, 촬영 들어가는 순간까지 신은경이 안 됐다는 거 때문에 글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제가 작품을 시작할 때 플롯을 꼼꼼하게 짜고, 이걸 콘티로 짜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머릿속에 대충 잡아넣고, 아무데서나 잡아서 끌어당기는 스타일이에요. 이렇게 해볼까 해서 처음부터 쭉 따라가는게 아니라, 어디 걸리는데 거기부터 쭉 잡아당기면 감자 넝쿨 캐듯이 쭉쭉 뽑아내는 거죠. 그러다가 다 뽑을 때까지 잡아당기는 건데, 신은경, 신은경, 신은경 이러고 앉아 있으니 잡아당길 데가 없어서... 막 쓰는 게 고통 그 자체였어요. 그때 인터넷에서 장기가 나왔는데, 내일 원고 줘야 하는데 새벽까지 장기 하고 앉아 있으니(원고) 원고 늦었다고 욕 무지하게 먹었죠(웃음)

드 : 그래도 유동근씨의 호연이 빛났던 작품 아닌가요? 개망나니처럼 돌아다니다, 복귀해 빼앗긴 기업을 되찾는다는... 저는 꽤 재밌게 봤는데요.

정 : 다시 하고 싶어요. 나름대로 균형점을 찾아서.

드 : 지금 생각해 보니 뭔가 햄릿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돌아온 탕아의...  선생님 작품은 그런 성향이 강한 것 같아요. <신돈>도 맥베드 라던가.. 그런 느낌이 있구요. 연극적인 요소들.

정 (웃음) : 제가 고등학교 때 이미자 쑈를 좋아해서 쑈단 단장하는 게 꿈이었어요. 고2때 머리 기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극반에 들어갔거든요. 여름에 공연 끝나면, 그때부터 학교 안 가고, 그대로 머리 기르고 돌아다닌 거예요... 고3때도 공부 좀 하려고 했는데, 그 맛이 들려서 우물쭈물 하다가 반은 학교를 안가고... 그 때 연기를 곧잘 했거든요? 그래서 주인공도 맡고 그랬는데, 근데 제가 좀 자의식이 강했거든요. 무대 올라가서, 아 내가 왜 여기 올라와 있지? 쟤는 왜 저기 있지? 관객들 보면서 쟤는 왜 왔지? 이러고 앉아 있으니, 제가 그래도 명색이 주인공인데, 대사 까먹고 (웃음) 이렇게 되니까, 선배들이 연기를 하지 말고, 연출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너는 아무리 봐도 연출이 어울린다고 (웃음) 대학가서 연출을 하는데... 그런데 그 당시 대학가에서는 신춘문예 당선되면 학교에서 영웅이잖아요?

드 : 문학의 시대였죠.

정 : 그런데, 그때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이 여자가 시를 쓰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좀 해봐야겠다 싶은데, 시는 써본 적도 없고, 그래도 희곡은 좀 해봤으니까, 희곡을 해보자... 제가 글하고는, 국어하고는 별로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시라는 걸 제가 하기에 가당키나 했겠어요? 그래서 희곡을 몇편 썼는데, 이게 얼떨결에 몇 편 당선된 거죠.

드 (웃음) : 그 여자분 하고는....

정 : 잘 안됐어요.(웃음)

드 : 그럼 선생님의 집필인생은 여자로 인해서 시작되었네요.(웃음) 그리고 드라마가 아니라 희곡이었구요.

정 : 그러다 보니 좀 심각해요. 희곡작가들이 방송국에 와서 전부 망했어요. 희곡을 쓰는 마인드로 연속극을 한다는 게 힘들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은 적응을 못했는데.. 근데 제가 좀 우스운 게 '싼마이 마인드'가 있어요. 빠져들면 막 빠져들어 버리고 유치하게 보이거나 말거나 내가 좋으면.. 물론 아까도 말했지만, 대사에 의미를 복잡하게 넣고 하는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한 거도 있지만(웃음) 그래도 이런 게 상당 부분 중화가 되는 거죠. 싼마이 기질이 희곡적인 부분을 많이 완화했다고 해야 할까? 희곡 쓰시던 분들이 드라마 쪽에선 다들 잘 안됐는데, 그분들은 분명 저보다 재능도 많고, 그쪽에서는 저보다 훨씬 인정받는 분들인데 다만 장르의 차이라고 해야겠죠. 달리 말하면, 그 분들은 꼿꼿이 자신들의 신념을 지킨 거고, 저는 타협하고 현실에 적응했다고 할 수도 있구요. 그러고 보니, 희곡 쓰던 사람들 중에 TV쪽으로 넘어와 버틴 사람은 저 하나 밖에 없는 거 같은데요?

드 : 단순히 적응을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선생님의 성공을 말하기엔..

정 : 전 지적이거나 그런 거 보다는 감정에 충실한 거 같아요. 막 빠져들어서 울기도 잘 울고.. 요즘도 자주 울어. 길 가다가 거지를 보면 울고 있고, 강아지 보면 울고...

드: <신돈>도 사실 그런 정서잖아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보다보면 웃다가도 어느새 슬퍼지고 울음이 나는 그런 드라마에요. <신돈>은 타인의 고통과 구원을 화두로 던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드 :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선생님 사극은, 항상 어떤 화두를 던지셨지 않습니까? <왕과 비>는 수양대군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듯이 보였지만, 나중에 가면 인간 수양대군을 나락에 빠뜨렸고, 연산군도 그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내세워, 광인(狂人)이 아니라 정치인 연산으로 그려내셨는데...

 

<왕과 비>와 이덕일 논쟁

정 : <왕과 비>는 권력을 멋있게 그렸다고 그런 비판을 받았는데, 권력이 얼마나 무섭고,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느냐를 봐 줘야 하는데 그렇게 안 봐주더라구요, 이 드라마를 보고 야 권력 그거 멋있다.. 그렇게 생각 든다는데,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일본 사람들한테 이런 걸 물어봤어요, 너네 사극 시청률이 왜 이렇게 낮냐? NHK에서 방영하는 사극들이 거의 10% 수준이거든요. 일본 사람이 대답하기를, 대사가 현대어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전에 일본사람들이 쓰던 말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에 젊은 애들은 그 대사를 못 알아듣는대요. 그 말은 곧 젊은 애들은 보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냐 라고 물으니까, 고개 끄덕이면서 보지 말라는 말이래요.(웃음) 그럼 왜 만드냐 그러니까,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고, 일본의 미래를 생각하는 10%를 위해서 그런 장치를 했다는 거예요. 일본 대하사극 재미없어요. 생각하면서 봐야하는 장면이 너무 많죠. 한 5년 전이던가? 한글로 하면, 덕천경희(德川慶喜 : 도쿠가와 요시노부)라고, 마지막 쇼군이래요. 이 작품이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대요. 일본의 근대사를 보면, 메이지 유신 때 애국적인 우익들이 그네들 말로는 애국적 우익이고, 유신지사인데, 얘네들이 들고 일어나 쇼군 하고, 일본을 걸고 한판 싸움이 붙잖아요. 이때 이 마지막 쇼군이 장군으로 보기엔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죠. 여자나 좋아하고 시나 쓰고, 예술가가 장군이 된 거죠. 덕분에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도 망했다 이거죠. 결론은 애국심 가득찬 유신지사들에 의해 일본은 근대화로 갈 수 있었고,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었다. 그게 우익들의 주장이었는데, 이 사극은 그 녀석이(쇼군) 져 주었다라고 해석한 거예요. [덕천경희]가 누구보다도 일본에 대해 고민을 했고, 일본의 미래를 어떤식으로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막부란 형식으로는 도저히 일본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자기 대에서 막부 정치를 끝내야겠다고 결론을 내린 거죠. 그래서 막강한 권력과 군대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항복을 한 거죠. 만약 그 드라마를 인정한다면 지금의 우익사회는 존립근거 자체가 흔들리는 거잖아요. 일본 사회가 벌집 쑤시듯이 난리가 났죠. 요미우리가 조지고, 아사히는 역사왜곡이라 거품 물고, 솔직히 좀 부러웠죠. 우리 드라마가 과거 현실을 반영하고, 이걸 현실세계와 연계해 어떤 현대사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를 해 본 적도 없고, 현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을 되돌아 보게 만들고,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한 작품이 없었잖아요. 그런 역할을 한 드라마가 없었잖아요. 죽기 전에 그런 드라마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도쿠가와 요시노부(덕천경희 : 德川慶喜)

1997년 NHK에서 방영된 사극으로 우리에겐 <으라차차 스모부>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모토키 마사히로가 주인공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로 나온다. 이 작품은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 역사에서 요시노부는 도쿠가와 막부 15대 장군으로 예술과 여자를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개항 이후 수출입의 증가로 물자부족이 생기고, 경제가 혼란에 빠진 상황. 요시노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건넨다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게 된다. 조정에서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도쿠가와에게 관인을 주지 않고, 영지 반납을 명하게 된다. 결국 막부의 무사들이 반발, 교토에서 신정부군과 일전을 벌이게 된다. 이때 그 유명한 가츠 카이슈와 사이고 다카모리의 협상으로 교토는 전쟁의 화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협상으로 도쿠가와는 가문은 유지하되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주게 된다.

이후 요시노부는 공작 작위를 받고, 2명의 애첩을 거느리고, 유유자적 사진 촬영 등을 하며 남은 여생을 보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이 에도성에서의 긴박한 대치, 그리고 가츠 카이슈와 사이고 다카모리의 협상에서 일본의 미래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던 것이다. 모토키 마사히로와 츠루타 마유의 멜로라인도 흥미로웠던 드라마.  
  

드 : 그렇다면 사극작가의 역사해석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요. 이덕일씨 하고의 논쟁도 유명했지 않습니까.

정 : 이덕일씨 때문에 싸움도 하고, 언론중재 위원회까지 갔었는데, 까다로운 문제인데요. 작가가 역사에 대해 정직하다는 건 기록에 정직하다기보다는 시대정신에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대정신의 해석에 차이를 보여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건데. 시대정신과는 하등 상관없는 지엽적인 부분으로 논쟁하기 시작하면 본말은 온데간데 없고, 소모적으로 가는 거죠. 이덕일씨 사건은 사육신이 문제였어요.

어쩌면 일본 애들이 옳을지 몰라요. 저는 일본말을 모르는데, 하는 분위기나 대사 치는 억양을 보고 대충 이해하는데요, 그네들이 하는 게 금년 내년 이렇게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우리가 역사 속 그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이며, 그 시대를 어떻게 판단 할 건지를 계속 탐구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걔네들 드라마엔 보이거든요. 사극은 그게 중심이 되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것만 있으면 재미없고, 그래서 재미를 준다는 게 야사나 다른 장치들인데, 요즘은 본말이 바뀌어 가지고 재미 위주의 사극으로 가게 되는데, 이런 건 사극이기 때문에 더 많은 해독을 끼쳐요. 차라리 불륜은 괜찮아요. (불륜은) 해독이 되는데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기기 때문에, 최소한 옳고 그른 건 판단하고 보잖아요. 사극은 (시청자들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사극을 쓰는 사람은 역사관을 가지고 써야 해요. 자기만의 정신세계, 치열한 역사관, 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찾는 열정이 없이 쓰면 독약이죠.

 

이덕일 논쟁

재야 사학가 중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가장 활발한 저술활동을 보이는 학자. 새로운 역사해석으로 주목을 받았다. 일반에게는 '오국사기'나 '조선왕 독살사건' 같은 책으로 알려진 학자인데, <왕과 비> 방영 당시 세조의 계유정난에 대해 99년 2월호 <신동아>에 기고문을 올리면서 정하연 작가와의 역사논쟁이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하연 작가가 수양대군을 고뇌하는 인물로 그렸던 이유는 권력의 무서움과 피폐함을 표현하려 한 것이었는데, 이 때 당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켰던 것은 그 당시 조선이 개국한지 겨우 60년에 불과 했기에 나라가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이덕일은 역사에 대한 원론적 평가와 함께, 아직 방영 전이었던 사육신 사건에 대한 평가까지 미리 내리면서 역사논쟁이 이어지게 된다. 사료에 근거한 사실(史實)을 중시하는 학자와, 이 사실을 재가공하여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작가와의 인식의 차이였으나, 이 문제는 결국 언론중재 위원회까지 가게 된다. 이후 이덕일씨는 사극작가의 역사해석에 대한 칼럼을 출판하였다.

 

조선왕조실록과 사극

드 : 선생님은 책을 직접 보고 쓰신 세대의 마지막 작가가 아니십니까? 조선왕조실록 말입니다. 선생님도 CD롬을(조선왕조실록 CD) 사용하셨지만, 그 전에 <조광조>할 때는 조선왕조실록을 보셨지 않습니까? 선생님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고생을 해가며 조선왕조실록을 보고, 그 안에서 고민을 한 세대인데, CD롬의 등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 옛날에 사극 쓸 때... 그거 고문이란 말이예요.(웃음) 그걸 다 읽어야 하는데, CD롬이 생겨서 선택해서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엄청나게 편리해졌죠. 그렇긴 한데 겉으로 보기엔 별 차이가 아닌 거 같지만, 한 시대를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아무리 하찮은 거라도 일독을 했다는 건 작품에 들어갔을 때 표가 나긴 해요. 취사선택해 뽑아 쓰는 거랑, 그 시대의 시대상황을 끝까지 더듬어 본 것은 아무래도 다르겠죠.

*조선왕조실록 CD롬

대한민국 사극의 역사는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의 역사라 할 수 있겠다. 조선왕조실록이 국문판으로 번역되지 않았던 시절, 신봉승 선생이 조선왕조실록 원문을 일일이 해석해 가며 MBC에서 <조선왕조 5백년>시리즈를 방영했다. 이후 국문번역판이 나오게 되면서 많은 사극작가들이 이를 가지고 사극을 쓰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극의 원 텍스트는 정사에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야사를 기록한 '연려실기술'의 조합이었다 (일부 사극작가들은 한국에서 번역된 국역판 조선왕조실록 대신 문체가 훨씬 쉬운 '북역판' 조선왕조실록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다 199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것이 조선왕조실록 CD롬이었다.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CD에 저장시켜 원하는 목차만 골라서 검색할 수 있는 CD롬의 등장은 사극제작 환경에 일대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대표적인 작가가 <용의 눈물>의 이환경 작가다.

드 : 신봉승 선생님의 경우는 국문판 나오기 전에 원본을 일일이 독해해서 보셨으니까, 또 그 때에 비한다면 선생님도 편하게 작업하신 경우겠네요. 신봉승 선생님도 드라마는 은퇴하고 소설만 집필하시는데, 사극팬으로서는 선생님이 거의 마지막 정통사극 작가시거든요. 후배작가들 한테, 사극은 이런 것이다 하는 점을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다면....

정 (웃음) : 그런 이야긴 못하겠군요. 저번에 젊은 작가가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대박을 터뜨리는 작가가 될 수 있느냐고 묻더라구요(웃음). 그래서 쓰는 재미로 살아라. 중요한 건 네가 행복해야 하지 않겠냐? 대박이든, 소박이든, 그거 생각하고 쓰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글 쓰는 게 아시다시피 돈보고 덤벼들면 못할 짓이잖아요? 지금은 작가들이 너무 대접을 받아요. 저번에 박준규씨가 밀어서 작가협회 이사로 이름을 올렸는데, 작가 협회 가서 두 가지를 떠들었어요. 원고료가 너무 비싸다, 작가가 너무 드라마에 간섭을 많이 한다. 나도 밖에서는 연출을 했는데, 연출이 하는 연출 작업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말 하지 않아요. 그건 연출의 맘이잖아요? 연기자도 마찬가지거든요. 연기자가 재창조 한다는데,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인데... 어떡하겠어요?

 

자유인 정하연

드 : <무진기행>의 김승옥 선생과의 인연이 알려져 있는데요.

정 : 저보다 몇 년 선배신데, 저를 좋아라 해주시고 죽이 맞아서, 신촌에서 자주 놀러 다녔죠(웃음) 그 양반도 대중가요를 몇 천곡, 저도 몇 천곡 알고 있었고, 오태석 씨하고 같이 살았고, 그 양반들 웃을 때 보면 애기 같죠.

드 : 오태석 교수님 뵌 적 있는데 정말 젊은 청년인 줄 알았습니다. 옷차림이라든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느낌이..

정 : 나는 장발까지는 했는데, 장발하니까 동네 아줌마들이 뒤에서 뭐라 뭐라 해서...(웃음)

드 : 패션에도 관심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정 : 옛날에 남대문에 가면 케네디 시장이란 데가 있었어요. 어쩌다 돈 생기면 달려가서 옷 샀죠.(웃음) 소매 해어지고 그런 것만 샀죠. 낡고 그런 걸 색깔 맞춰서, 그 때는 한참 멋 부렸죠. 사람들이 달라지고 싶은 게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우리는 다르게 나오는 사람에게 몰매를 주고, 전부 통일된 잣대로 들이대니까요. 귀걸이 했다고 야단맞고, 하지만 시대는 계속 바뀌고, 자꾸 변화가 오는데 사고는 저만치서 못 따라오면 안되죠.

드 : 축구 선수들 머리 염색했다고 뭐라 하고... 공중파 뉴스의 마지막 멘트가 머리로 축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정 : 아직 육군사관학교 정서가 있어요.

드 : 확실히 군대 정서가 남아있죠.

정 : 고등학교 때는 머리 깎으라고 하는 것에 울분을 토하면서, 정작 사회인이 되면 다시 애들 그런 꼴을 못 보는 거죠. 옛날에 서태지 음악은 잘 몰라도, 서태지 하고 다니는 모습은 정말 좋았어요. 상표 달고 다니고, 뒤집어 입고, 그러니까 친구들이 또 한소리 해요. 너 또 튀어보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정말로 좋아서 좋다고 그런다 해도...

드 : 우리 사회에 세대갈등이 깊어지는 이유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어르신이 없거든요. 무섭거나 근엄하거나.. 아니면 정치인들같이 부패했거나.. 선생님 작품을 보면 젊은이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젊은 시절에는 정말 고민도 많고 방황도 거칠게 하잖아요.

정 : 젊은이들이 방황하면 가엾죠. 우리도 전부 그런 시기를 거쳐 왔잖아요. 그런 모습 보면, 고통스럽죠. 근데 그걸 어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삐딱하게 바라본다면 문제가 해결이 안 되죠.

드 : 신돈의 방황하는 모습이 젊은이들의 본질적인 방황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던데... 일종의 운동권 학생같기도 하구요.

정 : 신돈이 뭘 발견해야 할지 해답을 찾아야 하는데, 저는 미치겠거든요. 왕의 정권을 받아 개혁정치를 하는 과정은 중요한 게 아니구요. 신돈이 이건 양보 못해 하고 죽을 때까지 지키려 하는 것, 그걸 찾으려 하는 거거든요. 공민왕이 나중에 칼을 목에 댄다고 하더라도 지켜내려는 그 무언가... 그걸 끌어안고 죽는 것. 그걸 찾아야 하거든요. 일단은 그게 정의니 양심이니 해서 정해놓고 가고 있지만, 그런 관념적인 거 말고, 끝까지 신돈만이 고집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낸다면, 여러분들한테 칭찬을 받는 거고, 못 찾으면 이제 마지막에 욕을 먹는 거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웃음)... 할 수 없죠.

드 : 선생님도 신돈과 함께 길을 떠나신 거로군요.

이 때 이성주 에디터가 자리를 뜨자 정하연 작가가 담배를 권했다. 한동안 담배에 대한 수다가 이어졌다.

 

애연가 정하연

정 : 담배 여기서 피세요. 아니 뭐 젊은 사람이라고 숨어서 피고, 그럼 이야기도 괜히 끊어지게 되고...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게요. 내가 원래 우리 딸네미랑 담배를 같이 피는데, 어떤 잡지사 기자가 꼬셔서 그걸 기사로 썼어요. 사방에서 쌍놈이라고. 딸이랑 맞담배질 한다고, 막 욕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제 딸이랑 하야트 호텔 커피숍에서 같이 담배 피고, 술 마시고 했는데, 그 때 거기 있던 하야트의 사람들이 늙은 사람이 젊은 여자 데리고 담배피고 술 먹고 한다고 뒤에서 막 욕했다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기사를 보니까 아버지랑 딸이란 걸 알았다고, 그 동안 몰래 흘기고 그런 거, 용서해 달라고...(폭소)

정 : 그랬다가 친구들이 하도 뭐라고 해서, 제가 얘기를 했는데요. 네 자식들이 네 앞에서 담배를 안 피는 게 네가 권위를 세우는 걸로 아는데, 그게 아니다. 그건 권위가 아니라, 너 스스로 자위하는 거라고 계속 쏴 댔어요. 그러니까 제 친구들도 화가 나서 저한테 계속 욕을 하는 거예요. 네가 하는게 지금 예술가 곤조 부리는 거다. 튀려고 작정했다 등등.. 하도 욕을 하니까 내 딸이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싫어서 이제 안 펴요.

예전에 미국에 가서 연극을 했는데, 거기 교포 친구들 하고 연습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얘네들이 연습하다 말고 계속 화장실을 가는 거예요. 알고보니 얘들이 담배 피러 간 거에요. 부모님들한테 이야기를 들은 거죠. 한국에서는 어른이랑 맞담배질 하면 큰일난다고, 그래서 제가 말했죠. 모두 담배 꺼내라고, 연습실에서 같이 피자고, 한참 연습해야 하는데, 중간에 빠져 나가면 연습의 맥이 끊기잖아요. 근데 못 피게 한다고 그게 가능하겠어요?

근데 이걸 또 교포 기자가 보고 기사를 썼어요. 난리가 났죠. 저 학교는 교장이랑 학생들이 맞담배질 한다고... 당장에 목사님들이 지원금을 보냈었는데 다 끊기고, 전 사탄이 된 거죠.

드 : 담배 좋아하시는 걸로 또 유명하신데요.  

정 : 제가 며칠전에 KFC에 닭을 사러 갔어요. 좀 많이 사러 갔는데, 닭을 주문하고는 좀 오래걸린다고 해서 밖에 나와 담배를 한대 피웠어요. 그런데, 안에 있던 외국인이 책을 읽고 있더라구요. 해서 슬그머니 뭔 책인가 하고 있는데, 이 녀석이 막 냄새 난다는 듯이 손을 휘젓는 거에요. 왜 그러는가 하고, 다시 고개를 들이미니까, 나보고 손가락으로 이러는 거예요.(가운데 손가락을 펴는) 제가 열받아 가지고 너 나보고 왜 그러냐? 막 화를 내고, 저도 이걸 하려고 하는데(가운데 손가락을 펴려는데) 갑자기 이게 멋있게 안되더라구요....(손가락) 이게 어려워(웃음). 창피하니까 화가 더 나더라구요. 그래서 감자를 그놈 입에 먹였어요. 막 욕을 하면서... 미국에서 배운 스페니쉬 욕을 다 끄집어내서 하니까. 이 미국 놈이 무서워하더라구요. 너 어디 나라에서 왔느냐?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다 길거리에서 담배 피운다. 미국놈이 한국에 왔으면 한국법을 따라야지. 여기서 그러면 되냐고 싸웠죠. 그게 미국에 가면 금연법이 있는 주가 반도 안 돼요. 최근 뉴욕시티에서 식당에서 담배를 못 피게 하는데, 반대로 뉴저지에서는 식당에서 비흡연자는 구석에 박혀 있어야 해요. 창가의 좋은 자리는 전부 담배 피는 사람으로 꽉 차 있고.. 한국이 이런 걸 왜 배워요?

내 주치의가 간접흡연에 대해 말해줬는데, 담배 열 갑 태우는 거 보다 길거리에서 5분 서 있는 게 더 위험하대요. 간접흡연 때문에 담배를 태우지 말라는 건 아무도 살지 않는 산속에 들어가 담배를 태우라는 거잖아요? 물론 못 견디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그 문제가 폐가 문제가 아니라 심장이 문제라는 거예요. 나이 들면 심폐기능이 떨어지잖아요. 담배를 피우면 산소공급이 안되서 위험하다는 건데, 나이들면 피지 말라는 거지. 그게 또 몸이 받으면 상관없고(웃음) 우리 의사선생도 펴요. 하루 열 가치는 걱정 없다. 나보고는 "정선생 담배 끊으면 깨끗해지는데 28년 걸린대. 선생은 이제 반성해봤자 소용없다고..."(웃음)

드 : 담배가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면 결과적으로 좋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던데요.  

정 : 78년도에 KBS에서 혐연권에 대한 토론을 했는데, 담배 많이 태우는 사람으로 내가 나갔고, 거기 혐연권 측에서 나온 게 김홍신이었는데, 이 사람이 끊었는지 어쨌는지... 암튼 그 때 비흡연자들이 담배 안태우는 사람들의 권리를 인정해 달라고 애원을 했어요. 그때 그걸 완전히 짓밟아 줬어야 하는데...(웃음) 양보해 준다고, 괜히 금연석도 만들어 주고 하니까 이제 이렇게까지 된 거잖아요. 사실은 이 세상에는 나쁜 놈들 많잖아요? 그런 건 가만히 내버려 두고, 애꿎은 담배태우는 사람을 몰아치니...

드 : 나쁜 놈들이 더 오래 살아요. 자기 건강은 엄청 챙기죠.

정 : 그런 놈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죽이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열심히 담배를 태워 줘야 해요.

드 : 암은 무섭지만...(웃음)

정 : 근데 암이란 게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게 얼마나 건강관리를 잘 하고, 생활습관이 어떠냐에 따라 발병시기가 늦어지고 빨라지고 하는 거지. 암의 제일 큰 원인은 스트레스래요. 담배는 스트레스를 많이 감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암을 막아주고 있다니까요. 얼마나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줘요?

드 (웃음) : 요즘은 방송사에서 흡연장면 삭제를 원칙으로 하죠?

정 : 옛날에 KBS 사장이 그때 그랬는데, 태우는 사람이 그랬으면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겠는데, 담배를 안 태우는 사람이 나서서 그러는 거에요. 야... 이거 참 답답하더라구요. 그래서 교육방송 할 때 연출한테 씬 마다 담배를 펴라라고 그렇게 말했어요.

드 (웃음) : <명동백작>인데, 당연히 태워야죠. 그 캐릭터들이 담배 없이 견딜 수 있나요.

정 : 작가들도 그렇지. 담배 한 대 술 한 잔이면 모든 상황이 다 설명되는 씬이 있는데, 이게 무슨 고문이냐구요. 그 캐릭터의 심정을 어떻게 그려내냐구요. (문하작가를 가리키며) 얘가 담배를 끊었어요. 그래서 구박을 많이 하는데, 얘는 끊을 이유가 있었어요. 기관지가 약해서 감기도 자주 걸리고 해서... 그런데 끊고 나서 손해보는 것도 많아요. 살도 찌고, 이상한 취미도 많이 생기고...(웃음)

최 (웃음) : 사실 낙이 없습니다....사는 맛이 뚝 떨어져요.

드 : 술은 많이 하십니까?

정 : 아, 술은 끊었어요. 예전엔 잘 마시다가.. 체력이 떨어졌는지 언제가부턴 다음날까지 술이 안 깨고, 그러니 일도 안되고.. 근데 끊기가 어디 쉽나요. 한 놈 와가지고 먹자 그러고.. 또 딴 놈이 먹자 그러고..  한 잔만 먹자 그러면 그걸 또 거절 못해서 한잔.. 하다가 허사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한 2년 걸렸는데, 진짜로 화내고 술잔도 깨버리고 그러면서 끊었죠. 이게 글쓰는 건 머리를 사용해야 되는 일인데, 술 이게 머리를 망쳐요. 여러분도 글 쓰시는 분들이잖아요? 조심하셔야 돼요. 머리가 안 돌아가면, 가을이면 낙엽이 구른다.. 이래야 되는데, 가을에 뭐가 구르더라? 자동차가 구르나?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 거죠.

 

<지금도 마로니에는> (2005, EBS)

EBS의 문화사 시리즈 제 3편. 김중태, 김승옥, 김지하를 비롯 1960년대 젊은이들의 치열한 삶을 다룬 32부작 드라마다. 백문이 불여일견. EBS드라마 다시보기를 추천한다.

 

드 : <명동백작>도 재미있게 봤는데요. 선생님 작품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정 (해맑은 미소): <지금도 마로니에는>이 제일 좋아요. 보던 말던(웃음)... 옆에서는 '정말 이렇게 쓸거요?'라는데 알게 뭐냐? 저는 TV 드라마가 1%의 영향력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드라마라면 그 나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거 많은데 굳이 드라마까지 시청률에 연연해야 하냐? 명동백작도 좋았지만...(웃음)

이거할 때 친구가 너 인기 떨어졌냐, 교육방송 가게? 그러더라구요. 암튼 작년, 재작년 <지금 마로니에는> 할 때가 제일 행복했구요. 극회 했을 때도 행복했구요, 연속극 하면서 돈 받고 그 때는... 행복하지 않았어요. 시청률이나 인기... 그거 이렇게 하면 된다 하는데, 착각이거든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와요. 작가가 인기스타도 아니고...뭔 이야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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