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38회 <신돈> -38회- #개경으로 가는 길 일단의 홍건적을 고려군이 에워싸고 달려온다. 자막, “공민왕 10년” #도성의 문. 앞 성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홍건적과 고려군들. #도성의 길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아낙들. 홍건적과 고려군이 달려온다. #선경전의 안 비어있는 용상. 염제신을 비롯한 대신들이 모여있다. 홍건적의장수:(서찰을 내밀며) 홍건군의 관선생장군이 고려왕에게 보내는 국서요 웅성거리는 대신들. 이인복이 눈짓한다. 이색이 앞으로 나선다. 홍건적의장수: 고려왕에게 직접 전달하라는 관선생장군의 명령이오 최영:(나서며) 무엄하다. 일개 도적의 수괴가 국서 운운하며 우리 전하를 입에 올리다니 흠칫하는 홍건적의 장수. 이인복:(웃으며 나서는) 우리 전하께서 병석에 누워 계시니 문하시중께 올리시면 될 것이네 염제신: 으흠 이색에게 서찰을 내미는 홍건적의 장수. 염제신에게 가져가는 이색. 염제신: 읽어보시게 이색:(서찰을 편다) 몽골의 오랑캐들이 중원을 차지하고 생민을 압박하니 이를 타도하고자 홍건군이 창의거병하였다. 수차례 전투 끝에 중원을 다 회복하였고,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있다. 이에 몽골의 압박을 받던 모든 부족이 힘을 합해 홍건군을 돕고 있거늘 유독 고려만이 협력을 거부하고 원의 동맹을 자처하므로 일차로 고려를 침공하여 서경을 함락하였으나 고려를 가엽이 여겨 회군하였다 최영: 이런 방자한 놈들이 있나. 지난번에 고려를 침공했던 홍건적 사만 명 중 살아서 돌아간 놈이 고작 삼백여 명에 불과했거늘 김원명: 계속 읽어보시게 최영:(부르르) 이색: 다시 한번 경고하노니 지금 투항하면 고려의 신민이 다 편안할 것이요, 거역하면 원을 치기 전에 고려를 먼저 정벌하여 고려의 산과 강을 모두 평토로 만들 것이다 최영:(염제신에게) 문하시중대감. 더 들어볼 것도 없습니다. 당장 저 놈을 끌어내 참수하고 홍건적과의 일전에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염제신: 으흠 김원명: 그렇게 하시지요 문하시중대감 이인복: 적이라고 해도 사절을 죽이는 건 옳지 않습니다. 우선 저들을 가두고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에 죽이든 살리든 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염제신: 그, 그렇게 하십시다 #동. 뜰 홍건적의 장수를 끌고 나오는 응양군들. 최영: 저놈들을 모두 가둬라 밖에 대기하고 있던 홍건적들을 모두 끌고가는 응양군들. #중서문하성의 회의실. 안 염제신을 상석으로, 이인복, 정세운, 김용, 경천흥, 김원명 등이 좌우에 앉았다. 염제신: 말씀들을 해보세요. 어찌하면 좋을지 김원명: 최영의 말이 백번 옳습니다. 홍건적 같은 도적떼와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경천흥: 홍건적의 사절을 죽여 또 다시 홍건적의 침입을 자초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적당히 달래서 돌려보내는 것이 김용: 아니지. 아니지. 그랬다간 원의 분노를 사서 더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오 정세운: 이건 원과 홍건적과의 싸움입니다. 고려가 끼어들 필요가 없지요 김원명: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한 때 홍건적이 연경 부근까지 점령한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원의 반격에 밀려 요동 쪽으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홍건적은 섬멸을 당할 겁니다. 그런 때에 고려가 홍건적에게 유화책을 썼다고 하면 원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정세운: 홍건적이 사절을 보낸 것은 원과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고려가 저들의 배후를 칠까봐 염려해서 일 겁니다. 만약 우리가 저들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홍건적은 원과의 결전에 앞서 고려를 먼저 침공하려고 할 겁니다 경천흥: 허면 홍건적에게 투항을 하자는 말씀입니까 이인복: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투항을 하자는 것이겠소이까 김용: 겁날 게 뭔가. 전번에도 홍건적을 섬멸했거늘 이인복: 그때완 사정이 다르지요. 그 때는 겨우 사 만의 군사였으나 이번엔 총력을 다해 고려를 치려고 들 것이외다 김원명: 어허 성산군께서는 참으로 답답하십니다. 우리가 살 길은 원과 손을 잡는 겁니다. 홍건적의 침입은 소낙비 정도에 불과합니다. 허나 원이 홍건적과 손 잡은 죄를 묻는다면 그건 소낙비가 아니라 벼락을 맞는 꼴이 될 겁니다 (염제신에게) 문하시중대감, 결단을 내리세요 염제신: 우선 전하께 고하고 김원명: 전하께 고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번 일은 태후전에 고하고 윤허를 받으면 될 것입니다 정세운: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는가 김원명: 전하께선 원의 이름만 나와도 치를 떠시는 분인데 홍건적의 사절을 죽이라 하시겠습니까 김용: 예. 여기서 결정을 하고 태후전에 고합시다 염제신: 으음 신음하며 눈치보는 염제신.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 어젯밤에도 주상께서 자네 침소에 드셨단 말이지? 혜비: 예, 태후마마 명덕태후: 저런. 주상께서 정신이 나셨구나 (웃으며 덕녕공주에게) 안 그렇습니까.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상께서 왕자를 보셔야지요. 주상께 채근을 했더니 부지런히 만령전을 찾으시는 모양입니다 (*만령전 - 후궁들이 머물던 전각) 덕녕공주:(민망한) 명덕태후:(혜비에게) 그래 주상께서 다정히 대하시더냐 혜비:(숙이는) 명덕태후: 손도 잡으시고..... 김원명:(밖에서) 태후마마. 소인 김원명이옵나이다 명덕태후: 어서 드시게 방문 열리고 김원명, 들어온다. 명덕태후: 오늘 조회엔 주상께서 참석을 하셨습니까 김원명:(웃으며) 승선들을 보내 여러번 재촉을 드렸으나 기침을 안하시는 지라 명덕태후:(웃으며) 그러실 것이야. 어젯밤에도 주상께서 만령전에서 주무시고 돌아가셨다니 혜비를 보며 웃는 명덕태후. 눈치만 보는 혜비. #강안전의 복도 노국공주: 어서 고하라고 하질 않느냐 최만생: 황공하오나, 전하께옵서는 노국공주: 한낮이 지났거늘 아직 주무시고 계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최만생:(쩔쩔 매는) 노국공주: 안에 안환관 있느냐 안도치:(안에서) 예, 마마 노국공주: 내가 들었다고 전하께 고하거라 #동. 안 안도치: 예, 마마 울상이 돼서 본다. 공민왕:..... 술이 덜 깼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공민왕. 안도치: 전하 공민왕:(밖에다) 시샘을 하시는 겁니까 #동. 복도 노국공주:...... 공민왕:(안에서) 내가 어젯밤에도 익재대감의 여식을 품 안에 안고 잤습니다 #동. 안 공민왕: 미안합니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세요. 내가 중전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키득거리며 웃는 공민왕. 안도치: 전하 공민왕: 이놈. 내가 중전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하질 않았느냐. 강안전 대문을 걸어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거늘 방문이 열리고 노국공주가 들어온다. 공민왕:(웃으며) 염려마세요. 익재대감의 여식을 품에 안고 잤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나는 밤새도록 술만 마셨어요 노국공주:...... 공민왕: 이 놈 도치야, 뭘 하고 있느냐. 중전께 내 말이 사실이라고 어서 고하지 않고 노국공주: 전하 마주앉는다. 그 시선을 피하는 공민왕. 노국공주: 정사는 대신들한테 맡겨놓고 술만 드시면 어찌합니까 공민왕: 어머니께서 잘 하시겠지요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 조정대신들이 모두 태후전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조회엔 나가 뭘 합니까. 어느 놈 하나 대전에 와서 고하는 놈이 없어요. 임금이 조회에 나오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그 말씀입니다 노국공주: 고려의 제도가 다시 원의 제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공민왕: 그러라지요 노국공주: 전하 공민왕: 홍건적을 물리친 원입니다. 그러니 원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부인 노국공주:...... 공민왕:....... 자조의 웃음 웃는 공민왕. 노국공주:..... 치솟는 눈물을 참는 노국공주. 공민왕: 미안합니다 부인. 먼저 아들을 하나 낳아야겠어요. 그래야 보위를 지킬 수 있다니 어떡합니까. 나는 기황후 눈밖에 난 사람이니 머잖아 기황후가 이 자릴 내놓으라고 하겠지요. 그럼 아들이 하나 있어야 내 대신 이 자리에 앉힐 거 아닙니까. 그래야 목숨이나마 연명을 하겠지요 미친 듯이 웃더니 탁자에 머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는 공민왕. 바라보는 노국공주. 안도치: 전하께옵서 선온이 과하셨는지라 노국공주:...... 눈물이 주르륵.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와 독대한 김원명. 김원명: 원과 다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원의 국력이 다시 강성해졌을 뿐만 아니라 원의 조정이 기황후의 손으로 들어갔다고 하옵나이다 명덕태후: 저런. 그럼 큰 일이 아니냐 김원명:...... 명덕태후: 주상께선 기황후의 눈밖에 난 분이 아니냐 김원명: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요 명덕태후: 어찌하면 주상의 보위를 지키겠느냐 김원명: 그 일을 소인에게 맡겨주십시오 마마. 소인이 기황후의 마음을 돌려놓겠사옵니다 명덕태후: 나는 자네만 믿네 김원명: 예, 태후마마 히죽 웃는 김원명. #강안전의 복도 방문이 열리고 나오는 노국공주. 겉옷을 벗었다. 황급히 굽히는 최만생과 이환관, 박상궁. 노국공주:...... 방안을 돌아보더니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 #동. 안 보료에 쓰러져 잠이 든 공민왕. 노국공주의 겉옷을 덮고 있다. 눈물 짓는 안도치. 잠든 공민왕. #곤성전의 안 노국공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덕녕공주:...... 노국공주: 기황후와 다시 손을 잡으라니오 덕녕공주: 황제폐하께서 뒤로 물러나시고 아유시리다라태자가 정사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원의 조정이 기황후의 손에 들어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노국공주:..... 덕녕공주: 들리는 소문엔 쿤란태자를 옹립하려던 세력들은 모두 숙청을 당했다고 합니다 노국공주:...... 파르르 떨며 고개를 돌리는 노국공주. 덕녕공주: 연경엔 덕흥군이 있습니다. 그걸 명심하셔야지요 #기황후의 처소 기황후 옆에 아유시리다라가 서있다. 원의 대신들이 시립했다. 흐뭇한 박불화. 기황후: 홍건적의 잔당들이 요동으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끝까지 쫓아가서 모두 섬멸을 해야할 겁니다. 그래야 다시는 한족이 반란을 꿈꾸지 못할 것이니 한 놈도 살려두면 안 됩니다 #원의 덕흥군의 처소. 안 술상. 박불화: 소인이 술 한잔을 올리겠습니다 덕흥군: 그러시게 술잔 집어 내민다. 박불화:(따르며) 고려왕이 되신 후에도 소인을 잊으시면 아니되십니다 덕흥군: 그럴 리가 있나. 자네가 아니었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인데 최유: 그럼은요. 자정원사의 공이 크지요 덕흥군: 염려마시게 박불화: 강릉대군께서는 고려 왕이 되시더니 딴 소리를 하시기에 덕흥군: 나는 강릉대군처럼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닐세. 자, 내 술 한잔 받게 박불화: 예, 덕흥군마마 #기황후의 처소 안 기황후: 가엾다니오. 부황께선 쿤란에게 원을 물려주려던 분이십니다. 그리 됐으면 우리 모자는 꼼짝 없이 죽었을 겁니다 아유시리다라:....... 기황후: 명심하세요. 태자의 몸 속엔 고려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원은 몽골의 나라니 언제 저들이 우리 모자에게 등을 돌릴 지 모릅니다. 아시겠습니따 아유시리다라: 예, 황후폐하 기황후: 홍건적을 제압하고 난 후 선위를 받으셔야 합니다. 태자께서 원의 황제가 되셔야 우리 모자가 살아남습니다. 그 때까진 동정의 눈물 따윌 흘려선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아유시리다라: 예, 황후폐하 기황후: 어미는 천하를 다시 통일할 겁니다. 중원과 몽골, 요동과 고려를 모두 내 발 밑에 엎드리게 만들 겁니다 #도성의 문. 앞 고려군에 에워싸인 홍건적들이 나온다. 최영: 너희들은 도적떼에 불과하다. 마땅히 죽여 고려를 침공한 죄를 물어야 할 것이나 우리 국왕전하의 자비로 살려주는 것이다. 다시는 고려 땅을 기웃거리지 마라. 또 다시 고려를 침공하는 순간 고려는 거대한 홍건적의 무덤이 될 것이다 풀어주라는 신호. 홍건적의 말고삐를 놔주는 고려군들. 정신없이 도망치는 홍건적들. 노려보는 최영의 -. #초선의 집. 안방 신돈의 새옷. 초선:..... 정성껏 개기 시작한다. 박의처: 개태사에 내려가시려구요 마님 초선: 편조스님께서 안거를 끝내시고 산을 내려오실 날이 되질 않았느냐. 안거를 시작하는 것을 결제라 하고, 끝맺는 것을 해제라고 하는데 해제가 끝나면 새옷을 입는 의식이 벌어지는데 이를 두고 공덕의라고 한다 새옷을 다 개고 가만히 한숨을 쉬는 초선. 박의처: 조심하세요 마님. 세상이 어수선하니 개태사 내려가는 길이 편안치가 않으실 겁니다 #시골길 박서방이 초선이 탄 말을 끌고 간다. 굶주린 유랑민들과 마주친다. 초선을 보자 애원하듯 바라보는 유랑민들. 마음이 아픈 초선. 말을 재촉하는 박서방. 뒤돌아보는 초선. 허기에 지쳐 쓰러지는 유랑민들. 초선: 멈추게 박서방: 모른척 하고 가시지요 마님 초선: 멈추래도 할 수 없이 말을 멈추는 박서방. 초선, 말에서 내려 말 잔등에 실은 바랑에서 돈주머니를 꺼낸다. 박서방: 작년, 재작년에 거퍼 흉년이 들어 온나라에 굶주린 백성 천진데 그걸 다 무슨 수로 도와주려고 그러십니까 마님 못들은 척 유랑민에게 가는 초선. 바라보는 박서방. 그 시선에 돈을 나눠주는 초선. 우르르 달려들어 손을 내미는 유랑민들. 한숨 내쉬는 박서방. #다른 길 초선의 말을 끌고 오는 박서방.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는 초선. 갖난애한테 젖을 먹이고 있는 아낙. 옆에는 허기에 지친 어린 아이들이 쓰러져 있다. 초선, 말에서 내린다. 체념하듯 입을 다물고 있는 박서방. 초선, 아낙에게 간다. 초선:.... 그 시선에 갖난애 입에 젖을 먹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낙. 움직이지 않는 갖난아이. 죽었다. 그래도 한사코 젖을 물리고 있는 아낙. 초선:..... 눈물이. #도성의 문. 앞 유랑민들이 도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유랑민들을 밀어내고 있는 군졸들. 도성문을 닫는다. 그 틈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유랑민들. 겨우 도성문을 닫는 군졸들. #도성의 어느 집. 앞 대문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 사람들. 공철이 안에서 나온다. 공철: 자자. 기웃거리지만 말고 안으로 들어오시오. 미륵보살님께서 손 한번만 대시면 다 죽어가던 사람도 벌떡 일어납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동. 방 안 심각한 원현. 앞에 환자가 앉아있다. 원현: 쳇기가 들었구만. 으음 소매를 걷어 부치더니 환자의 입에 손을 집어넣고 등을 두드린다. 켁켁거리는 환자. 호기심에 차서 보고 있는 사람들. 환자의 입안을 쑤셔대던 원현이 손을 뺀다. 그 손에 시커먼 음식찌꺼기가 묻어있다. 원현:(혀를 차며) 삼년 전에 잘못 먹은 고기가 창자 속에 들어있으니 속이 꽉 막힐 수밖에 옆에 놓인 물그릇에 손을 닦는 원현. 가뿐숨 몰아쉬고 있는 환자. 원현: 속이 시원하시오? 환자: 예. 예 한결 난 것 같습니다요 수군대는 사람들. 원현: 손은 왜 그러시오 손목이 꺾여서 굳어진 사람을 가리킨다. 장정: 모르겠소이다. 갑자기 손목이 비틀어지더니 통 펴지질 않지 뭡니까 원현: 남의 물건에 탐을 내니 손목이 비틀어질 수밖에. 가까이 오시오 장정: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시오. 남의 물건에 탐을 내다니 불문곡직 장정의 손목을 잡아 비트는 원현. 비명을 지르는 장정. 손목을 놔주는 원현. 장정: 아예 손목을 꺾어놓을 작정이오 빙긋 웃는 원현. 손목을 폈다 구부렸단 하는 장정. 굽었던 손목이 퍼졌다. 감탄하는 사람들. 원현: 또 한번 도적질을 하면 다시는 손을 못 쓸 것이니 그리 아시오 장정:(일어나서 절하며) 아이구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미륵보살님. 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습니다 와아 웃음이 터지는 사람들. #동. 마당 손목을 폈다 굽혔다 하며 나오는 장정. 공철이 눈을 찡긋한다. 장정:(헛기침하더니) 거 참, 신기하다. 미륵보살님 손이 내 손목에 닿으니까 여기서 불이 확 나더니 아픈 게 씻은 듯이 낫지 뭔가 마당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수군댄다. 장정:(공철에게) 사례는 얼마나 드려야하는지 공철: 사례는 필요 없소이다. 미륵보살님이 돈 받고 병 고쳐주는 것 봤소이까 장정: 미안해서 공철: 그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성의껏 놓고 가시면 됩니다 장정: 하마터면 생병신이 될 뻔 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부지런히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하는 장정. 공철:(사람들에게) 세상을 구하려고 오신 미륵보살님이십니다. 없는 사람은 공짜로 병을 고쳐주시니 염려말고 들어들 가세요 웅성거리는 사람들. #개태사 가는 길 짐꾸러미 들고 앞서오는 박서방. 초선이 따라온다. 박서방: 마님도 참. 말까지 팔아서 나눠주시고 그 먼길을 걸어오셨으니 초선: 내 걱정 말고 앞서게 박서방: 개경으로 올라갈 길이 까마득합니다요 마님 다시 앞서가는 박서방. 초선:....... 개태사 올라가는 언덕길을 바라보는 초선.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어느 석굴. 안 해동이 되는지 석굴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신돈:....... 더부룩히 자란 수염. 고요히 앉았다. #개태사. 법당. 앞 가사를 걸친 덕운이 한껏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다. 불자들이 공덕의를 바치고 있다. 동자승들이 받아서 두 팔에 안고 있다. 덕운: 내일은 편조스님이 동안거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시는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해제날 받는 옷은 새옷이든 헌옷이든 깨끗이 빨아서 입으라 하셨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덕운을 따라 합장하는 불자들. #부근 개울 초선과 박서방이 온다. 곰순네가 계곡물에 옷을 빨고 있다. 곰순네:(보더니) 아이구 소활동 보살님 아니십니까 초선: 해제날 입으실 옷을 빨고 있는가 곰순네: 예 웃고는 부지런히 빨래를 한다. 초선: 이리 내시게 옷보따리를 내주는 박서방. 계곡으로 내려가는 초선. 옷을 꺼내 빨기 시작한다. 힐끔보더니 씩 웃는 곰순네. 정성껏 옷을 빨고 있는 초선. #석굴. 안(밤) 어둡다. 신돈:...... 괴롭게 감은 두 눈. 그 위에, 큰스님:(소리) 아직도 속세의 연을 끊지 못했느냐 신돈:(신음)........ 큰스님:(소리) 눈을 뜨거라 신돈:....... 천천히 눈을 뜨는 신돈. 석굴 벽에 큰스님이 마주앉았다. 신돈: 스님 큰스님:(웃으며) 그러니 눈을 감고 있어도 세상이 보이고, 귀를 막고 있어도 온갖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입을 다물고 있어도 절로 탄식소리가 새어나오는 게야 신돈:....... 큰스님: 중이 부처님의 법을 깨우치려면 비정해져야하는데 그러자면 세상에 대한 연민을 먼저 버려야 하느니라 신돈:....... 큰스님: 내가 젊어서부터 수행을 한답시고 묵언도 해보고 면벽 삼년도 해보고, 산에 굴을 파고 들어앉아 꼼짝 안하고 지내봤다만은 죽는 날에야 부처님의 법을 눈꼽 만큼 깨달았느니라. 허나 그것도 잠깐, 나는 편안히 죽지를 못했다 신돈:......(괴로워서 눈 감는) 큰스님:(소리) 편조야. 서두르지 마라. 나는 지금도 너를 내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해 저승에 들지를 못했느니라 신돈:.......(눈을 뜬다) 큰스님 대신 어두운 벽. 신돈: 스님 눈물이 치솟는 신돈. #개태사 법당. 안 불자들과 마주앉은 덕운. 덕운: 편조스님은 월선스님의 법력을 그대로 물려받으신 분이야. 젊어서 그 먼 서역까지 가서 불도를 닦고 왔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니까 임금님께서도 급한 일이 생기면 편조스님만 찾았다는 게 아닌가 (헛기침 하고) 나보고 욕심 많은 중이라고 욕들을 하지만 부처님 모시는 도량을 크게 짓겠다는데 그걸 욕심이라고 할 수야 없지 (또 헛기침 하고) 편조스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면 소원성취들 하시게. 뭐든지 다 들어줄 것이니 문에서 곰순네가 손짓한다. 귀가 쫑긋해서 보는 덕운. #동. 앞 덕운, 나온다. 곰순네: 큰일 났우. 편조스님 모셔오라고 사람을 올려보냈더니 온 데 간 데가 없대요 덕운: 편조가 없다니 울상이 돼서 부리나케 달려가는 덕운. 곰순네:(뒤에다) 그 놈의 욕심은 #석굴. 안 덕운, 들어온다. 텅 빈 석굴 안. 덕운: 아이구 이 일을 어쩌나. 시주를 산더미 같이 받아놨는데 안절부절하는 덕운. #개태사 부근. 산 길 신돈, 산 길을 내려온다. 초선이 기다리듯 서있다. 신돈:(웃으며) 보살님께서 여긴 웬일이십니까 초선: 개태사로 내려오지 않으실 듯해서 길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신돈:(웃으며) 수행이 부족한 중이라 보살님께 덜미를 잡혔습니다 초선: 어디로 가시는지요 신돈: 잠깐 개경에 들러 보우왕사님을 만나 뵙고 금강산으로 가볼까 합니다 초선: 개태사는 번거로우십니까 신돈: 덕운스님 등살에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초선: 덕분에 사람이 넘치지 않습니까 신돈: 그러게나 말입니다 허허 웃는 신돈. #개태사의 마당 불자들에게, 덕운: 편조스님께선 조금 더 있다 산을 내려오실 모양입니다. 연등회 날에 맞춰서 산을 내려오시겠다니 어쩌겠습니까. 기왕들 절에 오셨으니 절밥이나 배불리 먹고 돌아들 가시지요. 나무관세음보살 얼렁뚱땅 눙치는 덕운. #개태사 부근 냇가 개울물로 얼굴을 씻는 덕운. 초선:(바라보다) 개태사엔 돌아오지 않으실 겁니까 신돈: 큰스님의 흔적을 다 지우기 전 까진 그럴까 합니다 초선: 큰스님의 흔적이라니오 신돈:(일어나며) 다 지워야지요 초선:...... 신돈: 월선스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시니 부자지간의 인연부터 끊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으며 합장하고 돌아서 간다. 초선:(바라보다) 편조스님 (다급하게 부른다) 멈추는 신돈. 얼른 보따리를 풀어 새 옷을 꺼내는 초선. 초선: 해제가 끝나면 입으시라고 준비한 겁니다 신돈:........ 초선:(웃으며) 깨끗한 물에 빨아 인연을 끊은 옷이니 입고 가시지요 신돈:........ 돌아서 옷을 받아 들고 초선을 바라본다. 저도 모르게 그 시선을 피하는 초선. 신돈: 이 옷은 소승이 간직해뒀다 마음 속의 누더기를 다 벗는 날 평생 걸치고 살겠습니다 두 손으로 옷을 받쳐 들어 보이고 바랑에 집어넣고 돌아서 가는 신돈. 초선:........ 산 길을 내려가고 있는 신돈을 바라보는 초선. #선경전의 안 최영, 이자춘, 이성계 등 무인들이 갑옷을 입고 서성거리고 있다. 정세운이 들어온다. 정세운: 아무래도 먼저들 떠나야겠네. 원에 패한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남하할 조짐이 보이고 요동으로 도망쳤던 조소생이 여진족을 규합해서 옛 쌍성 지역을 넘보고 있네 최영: 전하의 허락 없이 출정을 해도 되겠습니까 정세운: 전하께서 이미 자넬 서북면 도순찰사로 삼으셨고 (이자푼을 보며) 이장군을 동북면병마사로 삼았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일세. 사태가 급박하니 서둘러 떠나시게 경례를 붙이고 밖으로 나가는 최영과 이자춘, 이성계. #동. 앞 나오는 세 사람. 앞서가는 이자춘과 이성계. 최영: 잠깐 멈추는 이자춘과 이성계. 최영:(이자춘에게) 장군을 따르는 정예병이 이 천이 넘는다고 했습니까 이자춘: 무슨 말씀이신지 최영: 고려에 항복한 쌍성총관부의 고려 유민 가운데 장군께서 이천 명을 골라 생사를 같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자춘: 남은 고려 유민은 믿을 수가 없어서 최영:(바라보는) 이자춘:(웃으며) 아직도 소장을 믿지 못하십니까 최영: 그럴리가요 이자춘:....... 최영: 생사를 같이 하는 정예병을 거느리고 계시니 부러워서 하는 말입니다 이자춘: 최장군께선 고려군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까. 소장 같은 변방의 장수를 부러워하시다니오 최영: 이성계를 제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돌아보는 이성계. 그 눈빛. 최영:......(미소같은) 이자춘:(안보고) 이번 전투만 끝나면 아들 놈을 장군께 드리겠습니다 가는 이자춘. 이성계:.....(바라보는) 최영:.......(끄덕여보이는) 이자춘:(가다가)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오지 않고 이성계:.... 최영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 이자춘을 따라가는 이성계. 바라보고 서있는 최영. #대궐의 길 오는 이자춘과 이성계. 이성계: 최영이 아버님을 믿지 못하는 눈칩니다 이자춘: 아무리 충성을 바쳐도 항복한 장군은 믿지 않는 법이다 이성계:...... 이자춘: 그러니 부지런히 무공을 세우는 수밖에. 그게 고려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강안전의 뜰 안도치, 달려나온다. 정세운: 전하께선 안도치: 벌써 며칠 째 수라를 거르고 계시옵니다 정세운: 수라를 거르시다니 안도치:.... 눈물만 짓는데. #곤성전의 안 노국공주: 그게 무슨 말이냐. 전하께서 수라는커녕 물 한모금 드시지 않는다니 김상궁:....... 노국공주: 대답을 해보아라 김상궁:(어쩔 줄 모르는) 덕녕공주: 수랏상을 올리면 독이 들었다고 하신답니다 노국공주: 독이라니오 #강안전의 안 수랏상의 음식을 손으로 쓸어버리는 공민왕. 공민왕: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나를 죽이려고 음식에 독을 탔겠다 안도치: 전하 공민왕: 나는 물 한 모금 먹지 않을 것이야 #중서문하성의 회의실 염제신: 어허, 수랏상에 독이 들었다니 김원명: 아무래도 전하께서 실성을 하신 모양입니다 정세운:(눈 부릅 뜨며) 말조심 하시게 김원명: 기황후가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봉했다는 소문이 들려오니 신경이 곤두선 것이 아니겠습니까 염제신: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김원명: 문하시중께선 그것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김용:(일어나며) 몸조심들 하시지요. 설마하니 전하께서 정말 실성을 하셨겠습니까. 수랏상에 독이 들었다는 핑계로 눈안의 가시 같은 대신들을 골라 목을 자르시겠다는 거겠지요 염제신: 어허, 나도 익재대감을 따라 사직서를 올리고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지어야겠군 김용: 그 자리를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목 자르는 시늉하며) 이 목을 치시겠다는 거겠지요 정세운: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나 김용:(힐끔 본다) 정세운: 전하께서 오죽하시면 수랏상에 독이 들었다고 하시겠나. 원의 제도와 연호를 폐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그걸 다 돌려놓자고 하니 김원명: 살자니 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원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고려는 살 길이 없소이다 정세운:(부르르) #기철의 집. 앞 대문이 열리고 내다보는 노비. 김용이 서있다. 김용: 영안왕대부인을 만나 뵈러 왔네 #동. 안방 돌아앉는 기철모. 김용: 노여움을 푸시지요 대부인마님 기철모: 죽이려고 할 때는 언제고 김용:(웃으며) 그만 노여움을 푸시래도요 대부인마님 기철모: 내 아들부터 살려내. 도적질해간 재산도 다 도로 갖다놓고 김용: 덕성부원군을 살려낼 길은 없으나 대부인마님의 재산은 다 찾아드리겠습니다 기철모: 강릉대군은 어떡하구 김용:..... 기철모: 그 놈이 죽는 꼴을 봐야 내 분이 풀릴 거야 가슴을 치는 기철모. 김용: 염려하지 마십시오 대부인마님. 그러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연경과 자주 소식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기철모: 그게 정말인가. 황후폐하께서 내 원수를 갚아주시겠다고 하시든가 김용: 피보다 진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조심스럽게 웃어 보이는 김용. 기철모: 그러면 그렇지. 그냥 계실 황후폐하가 아니시지 #강안전의 안(밤) 명덕태후:..... 바라보고 서있다. 방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수랏상. 웅크리고 돌아앉은 공민왕. 명덕태후: 주상 공민왕: 쉬잇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조심하세요 어머니.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소리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명덕태후:(기막힌) 공민왕: 대궐 안에 믿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명덕태후: 누가 수랏상에 독을 탔다고 이러십니까 공민왕:(울부짖듯) 모두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화를 피할 수가 있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어머니. 내가 기황후의 오래비들을 다 죽이고 원의 연호를 폐하고 원의 제도와 풍습을 다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내가 죽어야지요. 그래야 기황후의 화가 풀릴 게 아닙니까 (버럭) 밖에 안도치 있느냐 #동. 복도(밤) 노국공주:..... 공민왕:(소리) 도치야 이 놈 #동. 안(밤) 공민왕: 대궐 문을 다 걸어잠궈라. 낮이든 밤이든 한놈도 안에 못 들어오게 단단히 걸어잠궈라. 안 그러면 이 놈들이 당장 오늘 밤에 날 죽이려고 할 것이야 명덕태후: 실성을 하셨습니다 주상 #동. 복도(밤) 노국공주:...... 방문이 열리고 나오는 명덕태후. 노국공주를 보더니 눈물을 훔치며 부르르 떤다. 명덕태후: 보기 좋습니다. 주상을 선동해서 기황후와 맞서더니 노국공주:...... 명덕태후: 어디 중전께서 감당을 해보시구려 훽 나가버리는 명덕태후. 노국공주:...... 냉정한. #법왕사의 법당. 안(밤) 불상을 향해 앉은 보우. 보우: 개경으로 올라오는 길에 뭘 보았느냐 신돈: 굶주린 백성들뿐입니다 보우: 마음이 아팠느냐 신돈:...... 보우:..... 신돈: 승과 중생의 고통이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참 뜻을 찾아 수행하는 불자나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유랑하는 중생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우: 한 겨울 동안 석굴에 앉아 있자니 무릎이 시리더냐 신돈: 예, 왕사님 보우: 배고픈 것이 참기 힘들더냐 무릎이 시린 것이 참기 힘들더냐 신돈: 둘 다 참기 힘들었습니다 보우: 나무관세음보살 (합장하고) 편조야 신돈:......(두 손 모은다) 보우: 중이 끝없는 고행을 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릎이 아픈 것과 배고픈 것을 다 잊기 위해서다. 여전히 무릎이 시리고 배가 고픈데 부처님의 법이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나무관세음보살 신돈:....... 합장하고 허리 굽혀 보우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보우: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과 열반묘심이 있으니 이를 대가섭에게 부촉하노라 #동. 뜰(밤) 지효:..... 보우의 설법을 듣고 서있다. 보우:(소리) 석가모니가 왜 꽃을 들었으며 가섭은 왜 미소를 지었느냐. 너의 삼년 화두니라 #강안전의 안(밤) 공민왕:(웃으며) 실성을 하다니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 정신은 멀쩡합니다 노국공주:.....(바라보고 있는) 공민왕: 예. 오히려 정신이 멀쩡해서 실성을 할 지경입니다 웃어대는 공민왕. 노국공주:...... 문득 눈물이. 흠칫하는 공민왕. 고개를 돌린다. 노국공주: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지 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에 전하께선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공민왕: 내가 한 일이 뭐가 있습니까. 편조를 시켜 전민변정도감을 세웠다가 대신들의 협박에 못이겨 꽁무니를 뺀 것이 전부가 아닙니까 노국공주: 전하께선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공민왕:(흠칫) 노국공주: 그뿐입니까. 조정대신들 중에도 전하를 믿고 따르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공민왕: 나는 희망이 아니라 고통만 줬습니다 노국공주:....... 공민왕: 편조를 데리고 대궐로 들어오던 날 환호성을 지르던 백성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예. 나를 하늘같이 믿었겠지요 노국공주: 지금도 백성들은 전하를 하늘 같이 믿고 있습니다 공민왕:...... 노국공주: 전하마저 저들을 모른다하시면 누가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겠습니까 공민왕: 덕흥군이 있질 않습니까. 기황후가 덕흥군을 이뻐한다니 덕흥군으로 새 임금을 삼으면 될 것이 아닙니까 노국공주: 그것만은 막아야지요 공민왕:(자조하듯 웃으며) 조정대신들이 다 내게 등을 돌렸거늘 내가 무슨 힘이 있어 그걸 막겠습니까 노국공주: 그래도 막으셔야 합니다. 편조스님과 하시려던 일이 바로 그 일이 아니옵니까 공민왕:.....(바라본다) 노국공주:..... 공민왕:(눈물이 치솟는다).....(얼른 고개 돌리며)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편조와 했습니다. 도성을 떠나던 편조가 얼마나 쓸쓸했겠습니까. 아니지요. 나를 원망하며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 아닙니까 노국공주: 전하를 원망할 편조스님이 아니십니다. 원망이라니오. 오히려 전하를 위로해드리고 싶었을 겁니다 공민왕:.....(바라본다) 노국공주: 연경에 볼모로 끌려가 지내시던 세월을 생각하십시오 전하. 지금의 전하를 그때의 강릉대군에 비하겠습니까. 지금은 고려의 국왕이십니다 공민왕:(오열하듯) 아무리 애를 써도 한 가지도 이룰 수가 없으니 그렇지 않습니까. 어찌해야 이 나라를 바로 잡을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길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저 캄캄한 어둠뿐이니 노국공주: 그럴수록 두 눈을 부릅뜨고 앞을 내다보셔야지요 공민왕:....... 노국공주: 전하께서는 그저 어둡다고만 한탄하시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고 계시겠습니까. 길이 보이지 않으면 아침을 맞을 준비라도 하고 계셔야지요 공민왕:..... 노국공주: 지금부터는 저들이 하자는대로 하십시오. 고려의 연호를 폐하고 원의 연호를 다시 쓰자고 하면 그러자고 하십시오. 정동행성을 다시 세우고 이문소에서 고려의 내정에 간섭을 하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십시오. 전하께서 변발을 하셔야 보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면 변발이라도 하십시오 공민왕: 이 자리만 지킬 수 있다면 뭐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노국공주: 기회는 또 올 것입니다 전하. 지금은 원이 득세를 하고 있으나 이미 기울어가는 제국입니다. 지금은 권신들이 전하를 핍박하고 있으나 신하의 도리를 논하는 자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백성들이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전하와 편조스님이 키운 희망의 불씨를 본 백성들이 아니옵니까. 그러니 어떤 굴욕도 참으셔야 합니다. 한나라의 장수 한신은 시정잡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갔다고 합니다. 한신이 비굴해서 그랬겠습니까. 천하를 평정하려는 큰 뜻이 있었기에 때를 기다린 것이옵니다 공민왕:........ #동. 복도(밤) 눈물 짓는 안도치와 이환관, 박상궁, 유나인 등. 못마땅해서 잔기침하는 최만생. #동. 안(밤) 노국공주:.....(웃고 있는) 공민왕:...... 노국공주: 먼저 웃음부터 찾으시지요 전하 공민왕:.....(웃으려고 한다)......(잘 안 된다) 노국공주: 화살을 맞고 쫓기는 짐승이 다리를 절룩이면 사냥개들이 더 맹렬히 짖는 법입니다 공민왕:(웃는다)....... 노국공주:(미소)...... 공민왕: 이렇게 웃으란 말씀입니까 환하게 웃는다. 마치 울음처럼. 공민왕: 이렇게요. 이렇게 말씀이지요? #법왕사의 법당. 안(밤) 보우: 견딜 수 있겠느냐 신돈: 문이 없는 절이라고 하셨습니까 보우: 내가 암자의 문고리와 빗장을 다 없앴다. 한번 들어가면 삼년은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야 신돈: 왕사님께서 소승의 화상이시니 제가 어찌 따르지 않겠습니까 보우: 이번엔 무릎이 아니라 입과 눈이 시릴 것이야. 속세의 풍경을 삼 년은 볼 수 없으니 신돈:...... 고개 숙인. 빙긋이 미소 짓는 보우. #법왕사의 마당 행장을 차린 신돈이 온다. 역시 행장을 차리고 기다리고 서있는 지효. 지효: 무문암으로 가실 겁니까? 신돈:(본다) 지효: 저희들은 보우왕사님께서 세우신 문없는 암자를 무문암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돈:(웃으며) 지효스님도 다녀왔습니까 지효: 소승은 아직 자신이 없어 자청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빙긋 웃으며 합장한다)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법왕사 입구의 언덕길 지효를 따라 나오는 신돈. 지효:(멈추더니) 편조스님 신돈:......(멈추더니) 지효: 대궐을 한번 보시고 떠나시겠습니까 신돈:.....(순간 망설이는) 지효: 이리오시지요 길끝으로 간다. 지효: 여기서 보시면 대궐이 아주 잘보입니다 신돈:...... 신음하더니 언덕길을 내려간다. 바라보는 지효. 멀어져가는 신돈. 지효:..... 대궐쪽을 바라본다. 대궐의 지붕들. #선경전의 안 염제신을 비롯한 대신들이 눈치만 보고 있다. 공민왕:(환하게 웃으며) 아무도 연경에 다녀올 사람이 없습니까 염제신: 황공하오나 전하, 원군과 홍건적이 요동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라 길이 다 막혔다고 하옵나이다 공민왕: 그러니 기황후께서 고려를 더 기특히 여길 것이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사지를 뚫고 달려와 충성을 맹세하는 고려의 사신이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겠습니까 이인복:(나서며) 전하 공민왕:(얼른) 이번에도 성산군께서 다녀오시겠습니까 이인복: 이런 때에 굳이 원에 사신을 보내시는 것은 공민왕: 내 사정을 좀 봐주세요. 자칫 잘못하다간 덕흥군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게 생겼으니 내 처지가 지극히 딱하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성산군대감 웃어대는 공민왕. 안절부절 못하는 대신들. 김원명과 김용의 눈길이 마주친다. 웃어대는 공민왕. 공민왕: 아무도 안 가실 모양이니 할 수 없습니다. 편조를 다시 불러 연경엘 좀 다녀오라고 부탁을 해야겠습니다 놀리듯 웃어대는 공민왕. #내불당의 안 노국공주:.... 불상을 바라본다. ‘불상’. 노국공주:(마음의 소리) 아들을 하나 내려주십시오. 저는 죽어도 좋으니 전하의 아들을 낳게 해주십시오 #선경전의 안 웃고 있는 공민왕. #도성 부근의 길 신돈:..... 도성을 바라보고 서있다. 멀리 도성의 불빛. 신돈:..... 도성을 향해 합장하는 신돈. <신돈38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