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37회 <신돈> -37회- #강안전의 안 방문이 벌컥 열리고 들어오는 명덕태후. 명덕태후: 대체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공민왕:...... 명덕태후: 조정대신들이 다 도성 밖으로 나가고 나면 누구와 정사를 논의할 작정이십니까 공민왕:....(고개 돌리는) 명덕태후: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주상 두 눈을 부릅뜨는 명덕태후. #선경전의 앞 안에서 나오는 이인복. 최영, 김첨수, 이성계 등이 기다리고 있다. 이인복: 대궐의 경비는 최영: 염려하지 마십시오. 물샐 틈 없이 해놓았습니다 이인복: 아직도 원의 눈치를 보고 있는 부원배들의 잔당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네. 게다가 전하께 참수당한 인당을 따르는 무리들이 유인우 등과 손을 잡으면 무슨 변란을 꾀할지 모르네.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하와 중전마마를 지켜드려야하네 최영: 예, 성산군대감 이인복:(김첨수에게) 자네와 이성계는 도성 밖에 정예군을 대기 시켜놓았다가 왜구의 침입이 있거나 변방에 소요가 일어나면 왕명이 없어도 즉각 출동해서 진압을 해야하네 김첨수: 예, 성산군대감 이인복: 서두르시게 최영, 김첨수, 이성계 등이 이인복에게 인사를 하고 달려간다. 이인복:....... 신음하며 바라보고 서있는 이인복. 정세운:(뒤에서) 성산군께서도 사직서를 올리실 작정이외까 이인복: 군부판서께선 대궐에 남으시지요. 대감마저 사직서를 올리면 전하를 지켜드릴 사람이 없습니다 이인복, 간다. 정세운: 이보시게 성산군. 이건 너무 하지 않소이까 이인복:.......(멈추는) 정세운: 아무리 편조가 하는 일이 못마땅하다고 해도 이건 전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이인복:(보며) 예의가 문제가 아니지요. 잘못하다간 전하께서 보위를 잃으실지도 모르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않소이까 훌쩍 가버리는 이인복. 신음하는 정세운. #강안전의 안 명덕태후: 참으로 딱하십니다 주상. 편조만 내치면 수습이 될 일을 가지고 뭘 망설이는 겁니까 공민왕:(고개 돌린) 명덕태후: 주상. 잘못하다간 중전께서 폐위를 당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러시다간 보위마저 잃으십니다 공민왕:(고개 돌린) 이인복:(밖에서) 전하. 소신 이인복 전하께 하직 인사를 드리려고 들었나이다 #동. 복도 엎드린 이인복. 이인복: 소신의 불충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공민왕:(안에서 버럭) 방문을 열라 황급히 방문 여는 내인들. 공민왕:(안에서 이인복을 손가락질하며) 내가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연경으로 끌려갔느니라. 내가 당한 수모를 짐작이나 하겠느냐. 저들에게 당한 굴욕을 참느라고 뼈가 시렸느니라. 그때마다 내가 맹세하기를, 하늘이 나를 도와 고려에 돌아가 왕이 되면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설움을 당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것이 내가 꿈꾸던 나라냐. 내가 너희같은 권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임금이 된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나처럼 나라 잃은 설움에 목이 메이고 나라 잃은 굴욕에 뼈가 시릴 것이라고 믿었기에, 편조와 함께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건한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편조를 시기하고 임금인 나를 핍박하고 그래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이냐. 입이 있다면 너희들이 바라는 것이 부귀영화가 아니라고 대답을 해보아라 마치 울부짖듯 내지르는 공민왕. 이인복: 전하 (흐느껴우는) #동. 뜰 노국공주:....... 전각을 바라보고 서있다. #동. 안 흐느껴우는 이인복. 그런 이인복을 노려보던 공민왕이 고개를 돌려 눈물을 참는다. 명덕태후: 에미마저 대궐 밖으로 나가야 정신을 차리시겠습니까 공민왕:..... 욱 치미는 걸 겨우 누르는 공민왕. 명덕태후:(벌떡 일어나며) 잘하십니다. 보위를 잃는 한이 있어도 편조는 버리실 수 없다니 훗날에 돌아가신 부왕의 얼굴을 어찌 보려고 이러십니까 훽 복도로 나가는 명덕태후. #동. 뜰 나오는 명덕태후. 노국공주를 보더니 멈춘다. 굽혀 보이는 노국공주. 명덕태후: 편조를 내치라고 하세요. 그래야 종묘와 사직을 보존합니다 흘키고 가는 명덕태후. 굽힌 채 움직이지 않는 노국공주. #동. 안 흐느끼고 있는 이인복. 공민왕:...... 천천히 이인복을 본다. 여전히 흐느끼는 이인복. 공민왕: 어째서 성산군의 생각이 편조와 다릅니까 이인복:(엎드린채 터지듯) 다르지 않사옵니다 전하 공민왕: 그런데 어째서 함께 가지 못합니까 이인복:...... 공민왕: 편조가 노비의 자식이라 그렇습니까 서글픈 미소. 이인복:(본다).... 공민왕: 그렇습니까 이인복:....... 다시 엎드리며 흐느끼는 이인복. 공민왕:.....(서서히 떠오르는 비웃음 같은) 차라리 내가 노비의 자식이면 좋겠습니다 큭큭거리며 웃는 공민왕. 점점 미친 듯이 웃어대는 공민왕. #법왕사의 마당 원현:.... 놀래서 보고 있다. 삭발한 신돈이 승복을 입고 법당에서 나온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원현. 신돈:(싱긋 웃으며) 나무관세음보살 원현: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지효:(옆에서) 편조스님께서 보우왕사님한테 구족계를 받으셨습니다 원현: 구족계라니오 지효: 정식으로 승적에 편조스님의 이름이 오른 거지요 원현: 전민변정도감은 어떡하구요. 천신만고 끝에 김용이를 잡아다놨는데 그게 다 도루아미타불이다 그 말씀입니까 신돈: 그럴 리가 있나 (웃고는) 먼저 떠나시지요 지효스님. 나는 대궐로 들어가 전하를 뵙고 곧 뒤따라 가겠습니다 지효: 그러시지요 바랑을 치켜 메고 가는 지효. #초선의 집. 안방 초선: 방이 붙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박서방: 편조거사님을 비방하는 방문이 사방에 붙어 있습니다요 초선: 뭐라고 비방을 했더냐 박서방: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도성의 거리 신돈, 온다.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멈추는 신돈. 상인1이 벽에다 방을 붙이고 있다. 상인1: 똑똑히들 보시오. 내가 하도 억울해서 방을 붙이는 거요. 부원배놈들이 쫓겨나서 이젠 살판이 났구나 했더니 부원배 뺨치는 도둑놈이 나타났지 뭐요. 편조란 놈이 어찌나 뇌물을 갖다바치라고 족쳐대는지 아주 죽을 맛이오 웅성거리는 백성들. 장정1:(나서며) 그건 약과요. 나는 딸을 뺏겼소이다 장정2: 큰소리 내지 마시게. 그러다 그 놈의 귀에 들어가면 귀신도 모르게 잡혀가서 죽는 수가 있어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백성들. 신돈:..... 싱긋 웃고 간다. #초선의 집. 안방 박서방: 그뿐이 아닙니다 마님. 요즘 남대가의 거상들이 모두 김용이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입니다요 초선: 그래서 모두 발길이 뜸한가 박서방: 저만 보면 모두 슬금슬금 뒤꽁무니를 빼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쩍습니다요 마님 초선: 으음 #도성 밖. 민가의 마당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는 관리들. #동. 방 안 이제현을 싸고 있는 대신들. 경천흥: 우정승대감. 성산군이 사직서를 올리고 도성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이제현:...... 염제신: 허면 대궐엔 군부판서 한사람만 남았군 김원명: 그 사람이야 원래 전하의 충복이니 그럴 수밖에요 염제신: 우정승대감. 됐소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 전하께서 항복을 하시겠소이다 웃는 염제신. 깊은 한숨 내쉬는 이제현. #동. 마당 안에서 김원명 나온다. 김원명: 자, 모두들 기운을 내시오. 성산군께서 사직서를 올리고 도성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와아 환성이 터진다. #대궐의 길 신돈, 온다. 적막하다. #강안전의 대문. 앞 신돈, 온다. 정세운이 대문 앞에 버티고 서있다. 신돈:.... 정세운: 나는 원래 무식한 사람이다 신돈:.... 정세운: 그러니 내 앞에선 전민변정도감이니 뭐니 어려운 소린 하지 마라 신돈:(미소) 정세운: 내가 여기 서 있다가 네 놈이 대궐로 들어오면 단칼에 쳐죽일 생각이었다. 허나 전하께서 네 놈을 애지중지하시니 죽이지는 않겠다. 전하의 질책이 무서운 게 아니라 너를 잃고 슬퍼하실 전하를 뵙기가 마음 아파서이다. 그러니 안에 들어가 전하를 뵙거든 작별인사를 고하거라 신돈:......(여전히 미소) 정세운: 앞뒤 따질 것 없이 네가 물러서지 않으면 전하께서 보위를 잃으실 것이니 그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신돈:(불쑥) 나무관세음보살 정세운: 내 말대로 하겠느냐. 아니면 여기서 내 손에 죽겠느냐 칼을 뽑아드는 정세운. #초선의 집. 마당 원현:(악쓰듯) 구족계라니오. 일이 여의치 못하니까 이제 와서 저 혼자 도망치자는 게 아닙니까 공철과 박서방, 장정들이 원현을 지켜보고 있다. #동. 안방 초선:....... 원현:(소리) 김용이란 놈이 감옥에서 풀려나오면 우릴 그냥 둘 거 같습니까. 우릴 다 죽이겠지요 짐을 꾸리던 박의처가 불안해서 초선을 바라본다. #동. 마당 원현:(돌아서며) 지금 대궐로 갑시다. 지금 대궐은 텅텅 비어있소이다. 그놈들이 버리고 간 자리를 우리가 차지하고 앉으면 될 게 아니오. 안 그러면 우린 다 죽을 거요 웅성거리는 장정들. #동. 안방 초선: 다 꾸렸느냐 박의처: 예, 마님 원현:(소리) 겁날 게 뭐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진데 머리에 감투나 한번 써보고 죽어야 할 것 아니오 박의처: 마님. 이 옷도 같이 쌀가요 초선:..... 본다. 초선이 지은 편조의 옷. 초선: 그냥 두어라 박의처: 애써 지으신 옷인데 초선:..... 또 한번 물끄러미 신돈의 옷을 바라보는 초선. #동. 마당 원현: 좋소이다. 그렇게 죽는 게 무서우면 그만들 두시오. 나 혼자 대궐로 들어가 전민변정도감을 지킬 것이니 밖으로 달려나가는 원현. 장정들과 눈이 마주치는 공철. 가자는 고개짓 하더니, 원현을 따라 나선다. 장정 서넛이 따라 나간다. 박서방의 눈치만 보는 남은 장정들. #도성의 길 원현, 온다. 그 뒤를 따르는 공철과 장정 서넛. 원현:..... 뭐가 분한지 눈물을 훔치며 간다. #강안전의 뜰 신돈이 들어온다. 안에서 달려나오는 안도치. 안도치:(반가워서) 어서오십시오 편조거사님 (하다가 승복을 보더니) 헌데 웬 승복을 입으셨습니까 신돈: 제게는 어버이나 다름없는 개태사 큰스님께서 병석에 누우셨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뵈러 내려가야겠는데 구족계를 받고 오라는 엄명이 계셨는지라 웃으며 합장하는 신돈. 안도치: 전 또 깜짝 놀랐습니다. 편조거사님마저 전하를 버리고 떠나가시나 하고 신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안도치: 소식은 들으셨지요? 신돈:(싱긋) 안도치: 조정대신들이 줄줄이 사직서를 올리고 도성 밖으로 나가더니 기어코 성산군대감까지 동참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어른만은 믿었는데 전하의 상심이 무척 크시옵니다 한숨을 내쉬는 안도치. 전각을 바라보는 신돈. 전각의 모습. 안도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길을 피해주는 안도치. 안으로 가는 신돈. #동. 복도 신돈, 들어온다. 허리 굽히는 이환관과 박상궁. 안에서 공민왕의 웃음 소리. 공민왕:(소리) 그러고보니 중전께서도 늙으셨습니다 웃음이 다시 이어진다. 신돈:...... 박상궁: 고하올까요 공민왕:(안에서) 밖에 누가 왔느냐 신돈: 소인 편조이옵나이다 공민왕:(안에서) 어서 들어오너라 방문 여는 나인들. #동. 안 방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신돈. 흠칫 멈춘다. 노국공주가 의자에 앉아있고, 공민왕이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공민왕: 그림을 그리려고 중전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보니 눈가에 잔주름이 보이는 게야. 그래서 내가 중전께서도 늙으셨다고 놀리고 있는 중이다 노국공주: 전하께서 자꾸 놀리시니 웃느라고 그렇지 않습니까 공민왕: 나는 보기 좋아서 하는 소립니다. 잔주름 하나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질 않습니까 노국공주:(웃으며) 저는 늙는 것이 싫습니다 공민왕: 그래요. 나만 늙으라 그 말씀입니까 웃으며 붓에 물감을 묻히는 공민왕. 노국공주의 얼굴을 그린다. 바라보는 신돈. 공민왕:(그림 그리며) 보우왕사님한테 구족계를 받으셨다구 신돈: 예, 전하 공민왕: 속세를 떠나겠다? 신돈: 월선스님께서 입적하실 날이 가까웠는지라 공민왕:(바라본다) 신돈:(미소) 공민왕:(탄식하듯) 내가 왜 진즉에 그 생각을 못했을꼬. 내가 편조를 왕사로 삼았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게 아닌가 (노국공주에게) 안 그렇습니까. 왕사나 국사는 스님이 아니면 맡을 수가 없는 자리니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을 게 아닙니까 (하더니) 아니지 아냐. 그랬으면 스님들이 들고 일어났겠지. 노비의 자식이 무슨 왕사냐 신돈: 전하 공민왕: 다녀 오거라. 임종은 하고 와야지 다시 붓을 놀리기 시작하는 공민왕. 신돈: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전하 공민왕: 서두를 것 없다. 대궐 안이 텅텅 비어 있는데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보더니) 내 걱정은 말아라. 나는 한줌 동요도 없으니 부지런히 다시 그림을 그리는 공민왕. 의자에 반듯이 앉아 움직이지 않는 노국공주. 신돈:..... 바라보더니 옷깃을 여미고 큰 절을 올리려고 두 손을 모은다. 공민왕: 잠깐 다녀온다면서 무슨 인사 신돈:(멈칫하는)...... 공민왕:(웃으며) 내가 원의 볼모로 연경으로 끌려가는 날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뵈었더니 어머니께서 작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날 때 나누는 거라면서 돌아앉으셨다 신돈:....... 눈물이 핑.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 돌린다. 노국공주: 전하. 아직도 다 못 그리셨습니까 공민왕: 다 되갑니다 노국공주: 편조스님의 초상화도 그려놓으시지요. 오랫동안 보시지 못할 것이 아닙니까 공민왕:....... 신돈을 바라본다. 신돈:..... 공민왕을 바라본다. 공민왕: 죽어서......땅 속에 묻혀서라도 내가 부르면 달려오겠다고 했느냐 신돈: 예, 전하 공민왕:..... 눈물을 삼키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이는 공민왕. #동. 뜰 신돈, 나온다. 전각을 바라본다. ‘전각’. 신돈:..... 옷깃을 다시 여미고 큰절을 올리는 신돈. #도성의 문. 안 초선이 온다. 도성문이 열리더니 관리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옆으로 피하는 초선. 뒤이어 김원명, 경천흥이 들어온다. 초선:..... 바라보는 초선. 뒤이어 염제신, 이제현, 이인복 등이 들어온다. #순군옥의 앞 김용이 나온다. 상인들이 우르르 달려와 굽신거린다. 기고만장한 김용. #강안전의 안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공민왕. 노국공주의 의연한 모습. 눈물 짓는 안도치. #전민변정도감의 앞 안에서 끌려나오는 공철과 장정들. 김용이 악을 쓴다. 공철 등을 두들겨패는 군졸들. #초선의 다점. 앞 장정들이 몰려온다. 불문곡직 초선의 가게를 때려부수기 시작한다. 가로막는 박서방을 두드려패는 장정들. #전민변정도감. 안 서류들을 가슴에 움켜쥐고 버티고 있는 원현을 끌어내는 군졸들. 버둥거리는 원현. 그런 원현을 질질 끌고 나가는 군졸들. #초선의 집. 마당 방에서 박의처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끌고 나와 마당에 팽개치는 장정. 여기저기서 도망치는 하인들. 집안의 물건들을 부수고 약탁하는 장정들. #도성의 앞 신돈이 나온다. 초선이 기다리고 있다. 신돈:..... 초선을 바라보더니 성큼 앞서가는 신돈. 그 뒤를 말없이 따르는 초선. #개태사. 마당(밤) 덕운이 살금살금 큰스님 방으로 간다. 방을 본다. 불켜진 방. 덕운:....... 마른침 삼키고 방문을 살며시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큰스님. 덕운:...... 휴우 안도의 한숨 내쉬고 방문 살며시 닫는 덕운. #동. 부엌(밤) 아궁이에 불 지피는 곰순네. 덕운:(들어오며) 별 일 없으시네 곰순네: 방에 들어가서 지키고 있으래도 그런다 덕운: 설마하니 앉아서 돌아가실까 곰순네: 앉아서 입적하신 고승이 한 두분이신가 덕운:(흠칫) 곰순네: 옆에 지키고 있어야 큰스님 입적하실 때 발우와 가사를 물려받지 덕운: 아이구 내 정신 보게 부리나케 달려나가는 덕운. #동. 큰스님의 방 안(밤) 큰스님:.... 웅크리고 앉은. 방문이 살며시 열리며 덕운이 들여다본다. 큰스님: 덕운이냐 #동. 마당(밤) 쪽마루에 엎드려 방 안을 엿보던 덕운이 깜짝 놀라 일어선다. 덕운: 예, 큰스님 큰스님:(안에서) 법당에 가서 반야를 데리고 오너라 덕운: 예, 큰스님 부리나케 법당으로 달려가는 덕운. #동. 큰스님 방 안(밤) 웅크리고 있는 큰스님. #동. 법당 안(밤) 덕운, 법당 안을 둘러본다. 불상. 덕운의 시선이 좌대로 향한다. 바람이 새어들어오는지 좌대를 가린 천이 펄럭인다. 흠칫 놀라는 덕운. 덕운: 어서 나오지 못해 ‘좌대’. 덕운: 빨리 나오지 않으면 혼날 줄 알아 소리만 지르고 다가가지 못하는 덕운. #동. 부엌(밤) 들어오는 덕운. 곰순네: 그 샐 못 참고 도로 나오면 어떡하누 덕운: 반야만 찾으시는 걸 어떡하우 곰순네:(밖을 보며) 이 밤중에 반얀 왜 찾으시누 #동. 큰스님의 방 안(밤) 바닥에 놓인 발우와 가사. 가만히 어루만지는 큰스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큰스님을 바라보고 있는 반야. 큰스님의 눈물이 발우를 적시고 있다. [신돈 5회 #18] 중에서 #개태사. 대웅전의 안(밤)(회상) 큰스님의 의발이 신돈 앞에 놓여있다.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있는 신돈. 입을 꾹 다물고 두 눈 감고 몸을 흔들고 있는 큰스님. 덕운: 뭣하러 이런 놈한테 큰스님의 가사와 발우를 물려주십니까. 뭐가 이쁘다고 눈물을 훔치는 덕운. 신돈:.....(더 고개 숙이는) 덕운: 정말 너무하십니다. 스님의 대를 이을 제자가 없어서 살생까지 범한 편조에게 가사와 발우를 물려주시는 겁니까 큰스님:(버럭) 배 곯지 말고 추위에 떨지 말라고 주는 게야 신돈:...... 발우와 가사를 큰스님 앞에 가만히 밀어놓는 신돈. 큰스님: 이런 못난 놈. 네 놈이 정말 이뻐서 내 가사와 발우를 물려주는 줄 아느냐 신돈:...... 큰스님: 네 놈은 오늘부터 평생 쫓기면서 살아야 돼. 그러니 이걸 가지고 집집마다 동냥질해서 먹고 살라는 게야 신돈:..... #동. 큰스님의 방 안(밤)(현실) 큰스님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 반야. 미소짓는 큰스님. #동. 마당(밤) 큰스님:(소리) 옳지. 옳지. 우리 반야가 이젠 다 컸구나. 옳지. 옳지 큰스님의 웃음 소리. #어느 냇가 신돈, 온다. 초선이 등을 돌리고 냇가에 앉아 발을 씻고 있다. 바라보는 신돈. 그 인기척에 놀라 얼른 수건으로 발을 닦고, 버선을 신기 시작하는 초선. 발이 부었는지 버선이 잘 안 들어간다. 무안해서 힐끔 신돈을 돌아보며 버선발에 힘을 주는 초선. 그 버선을 잡는 손. 흠칫 버선에서 손을 떼는 초선. 신돈이 초선의 버선을 신겨준다. 겨우 버선을 신는 초선. 신돈: 발이 많이 부었는데 걸을 수 있겠습니까 초선: 예.....(웃으려다) 스님 신돈: 아직 갈 길이 먼데 초선: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어나는 초선. 다리가 아픈지 기우뚱한다. 초선을 부축해주는 신돈. 초선:(보더니) 스님께서 부축을 해주시니 편합니다 신돈:(웃으며) 그 동안은 불편하셨습니까 초선:..... 바라본다. 조금은 안타까운. 신돈:.....(미소) 초선: 고맙습니다 허리 숙여 합장하는 초선. 앞서간다. 짐을 챙겨 그 뒤를 따르는 신돈. #어느 길 신돈과 초선, 온다. 신돈: 저 때문에 그 동안 애써 쌓아온 재물을 다 잃게 생겼습니다 초선: 스님께서 속세와의 인연을 끊으시는데 그까짓 재물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신돈:...... 멈추는 신돈. 초선:(웃으며) 아직은 먹고 살만하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스님 다시 앞서가는 초선. 그런 초선을 바라보고 서있는 신돈. #초선의 다점. 앞 원현:..... 피투성이가 된 원현이 바라보고 서있다. 난장판이 된 다점 안. 눈물을 훔치는 원현.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장정들이 몰려오고 있다. 재빨리 도망치는 원현. #강안전의 대문. 앞 유인우가 행패를 부리고 있다. 유인우: 전하를 뵙고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질 않느냐. 어서 문을 열지 못할까 씨근대는 유인우. 유인우: 대체 쌍성총관부를 함락시킨 소장에게 상을 내리지는 못할망정 투옥한 이유가 뭡니까. 그 대답을 들으러 왔습니다 전하 악쓰는 유인우. #강안전의 뜰 정세운: 이놈이 어딜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게야 칼을 뽑아들고 대문으로 달려가는 정세운. 대문이 열리더니 이제현이 들어온다. 흠칫 물러서는 정세운. 문밖으로 응양군들에게 끌려가고 있는 유인우의 모습이 보인다. 유인우: 이 놈들 놓지 못할까. 내가 전하를 뵙고 사생결단을 할 것이야 정세운: 이놈이 대문이 닫힌다. 부들부들 떠는 정세운. 이제현: 참으시게 정세운: 전하를 능멸하는 자들은 내가 모두 벨 겁니다 부들부들 떠는 정세운. #대궐의 길 씨근대며 오는 유인우. 김용: 잘하셨소이다 유인우: 나라를 지키는 장수들을 이렇게 대접해서야 안돼지 김용: 그렇구말구요 #강안전의 안 공민왕:...... 이제현: 신이.....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나이다 부복해서 흐느끼는 이제현. 공민왕:...(부르르 떨더니)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원명과 김용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현: 전하 공민왕: 예, 압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어 김원명과 김용의 죄를 묻겠습니까 웃어대는 공민왕. 바라보는 이제현의 처절한 -. #영수전의 안 명덕태후:(웃으며 김원명에게) 주상께서 정신이 번쩍 나셨을 게야 김원명: 경하드리옵나이다 태후마마. 마마께옵서 대궐의 큰 어른이 되셨습니다 명덕태후: 다 자네 덕분이지. 그래 주상께서 전민변정도감을 폐하겠다고 약속을 하셨느냐 김원명: 편조가 도망치고 없으니 누가 전민변정도감을 맡겠습니까 명덕태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카웃 웃는 명덕태후. #곤성전의 안 덕녕공주: 큰 고비를 넘기신 겁니다 노국공주:...... 덕녕공주: 조금만 더 혼란이 계속 됐어도 그 틈을 이용해 원의 대군이 고려를 침공했을 겁니다 노국공주: 마마께서도 그리 생각을 하십니까 덕녕공주:...... 노국공주: 저는 권신들이 지어낸 말로 알고 있습니다 고개 돌리는 노국공주. 덕녕공주: 기황후를 만만히 보시면 안 됩니다. 지금은 원의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나 언제 태도가 돌변해서 고려의 주인 노릇을 하자고 덤빌지 모르는 분이십니다 노국공주:(이죽거리듯 반문하는) 예. 기황후가 있었습니다 #기황후의 처소. 안 약에 취해 늘어진 기황후. 눈치보는 박불화. 최유: 황후폐하. 고려왕의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사옵니다. 그대로 두시면 요동 땅을 넘볼 자이옵나이다. 하루 속히 덕흥군을 고려 왕으로 삼으시고 대군을 보내 고려와 고려왕을 응징하셔야 할 것이옵나이다 덕흥군: 으, 으흠 (헛기침 하는) 최유: 황후폐하 기황후:..... 약에 취한 듯 히죽이죽 웃어대기만 하는 기황후. 박불화를 보는 최유. 박불화:....... 가만히 고개를 저어보이는 박불화. #개태사. 마당 들어서는 신돈과 초선. 멈춘다. 법당 앞에서 울고 있는 덕운과 곰순네와 스님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지효. 신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신돈. 곰순네:(신돈 보더니 달려오며) 왜 이제야 오느냐. 큰스님께서 그렇게 기다리고 계셨거늘 신돈의 가슴을 때리며 우는 곰순네. 신돈:..... 법당을 바라본다. 얼른 합장하는 초선. 법당으로 가기 시작하는 신돈. 지효: 지난 밤에 입적하셨습니다 신돈:(멈추는) 지효: 임종계를 남겨주시라고 말씀을 올렸더니 편조에게 법구를 거두라는 한 말씀 뿐이셨습니다 신돈:..... 눈물이 치솟는. 재빨리 합장하며 허리 굽히는 지효. 지효:(빠르게)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동. 법당 안 신돈:....... 바라본다. 큰스님, 웅크린 채 고개를 숙였으나 마치 산사람처럼 앉아있다. 신돈: 스님 큰스님:....... 신돈: 스님의 대답을 들으러 왔습니다. 저더러 어찌 하라는 말씀이신지 큰스님:........ 신돈: 저는 한번도 세상을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상을 믿지 못하니 부처님의 자비심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까? 제 마음 속에 가득찬 미움을 바로 보신 때문이 아닙니까 스님 큰스님:....... 신돈: 밤새도록 어느 집 처마 밑에서 고달픈 삶을 통탄하는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 이 놈의 세상을 통째로 다 태워버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가엾은 중생을 위한 분노였겠습니까. 아닙니다 스님. 잘못된 세상에 대한 제 미움이었습니다 큰스님:...... 신돈: 대답을 주십시오 스님. 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지귀의 원한을 무엇으로 씻어버릴까요. 세상을 바꿀까요, 저를 바꿀까요? 큰스님:...... 문득 큰스님의 몸이 반쯤 앞으로 꺽인다. 신돈:(외치듯) 스님 큰스님:...... 다시 움직이지 않는 큰스님. 신돈: 비구가 될 수 없는 노비의 자식이 구족계를 받았으니 그것으로 원한을 씻으라는 스님의 뜻입니까 큰스님:..... 신돈: 노비의 자식이 비구가 되었으니 전하와 함께 세상을 바꾸라는 게 스님의 뜻입니까? 그 해답을 들으러 왔습니다 큰스님:....... 신돈: 말씀을 해주십시오 스님. 이 놈이 어찌 살아가야할지 말씀을 해주고 가십시오 스님 엎드려 통곡하는 신돈. 그 엎드린 시선에 반야의 발. 고개를 돌려 그 발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드는 신돈. 반야가 큰스님의 가사와 발우를 들고 서있다. 신돈:...... 반야:...... 신돈:..... 큰스님을 본다. 큰스님:..... 나무토막이 쓰러지듯 앞으로 꼬꾸라지는 큰스님. 숨이 막히는 신돈. 웅크린 채 방바닥에 옆으로 나뒹구는 큰스님의 시신. #다비장 장작을 쌓아 놓았다. #다비장 가는 길 큰스님의 감을 지고 가는 신돈, 덕운, 지효와 젊은 스님들. 그 뒤를 따르는 초선, 곰순네, 반야. 그 뒤를 따르며 독경을 하는 스님들. 길 위 숲길에 몸을 숨기고 뒤따르고 있는 원현. 그런 모습과 독경소리가 흐르면서, (*[신돈] 제19회 중에서) 큰스님:(소리) 너 이놈 편조야. 세상이 지옥이다. 그 지옥을 면하는 것은 부처님 품밖엔 없는 게야 신돈:(소리) 세상천지의 신음 소리를 다 들었는데 어찌 듣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스님 큰스님:(소리)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단 말이냐. 세상이 지옥이래도 그런다 신돈:(소리) 이놈의 소원은 스님의 발우와 가사를 물려받는 거였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기약없는 길을 떠나는 제게 스님께선 그 발우와 가사를 주셨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스님의 가사로 바람을 막고, 스님의 발우로 밥을 얻어먹은 덕분에 세상 끝까지 다녀올 수가 있었습니다 큰스님:(소리) 부처님 세상은 더디 오는 법이다. 더디 오셔야 우리가 부처님을 맞을 준비를 할 것이 아니냐 #다비장 장작더미 속에 놓여진 큰스님의 감. 불을 들고 바라보는 신돈. 덕운이 장작더미를 부여안고 울기 시작한다. 따라 울기 시작하는 곰순네. 합장하는 초선. 독경하는 지효와 스님들. 그런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반야. 신돈:...... 문득 치미는 눈물. 불을 움켜쥐는 신돈. 신돈:(부르짖는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불을 놓는다. 확 피어오르는 불길. 신돈:(울부짖는다) 어서나오세요. 불 들어갑니다 큰스님 활활 피어오르는 불길. 치솟는 불길을 보고 무서워 울음이 터지는 반야. 그런 반야를 꼭 안아주는 초선. 고개를 돌린다. 어린애처럼 주저앉아 우는 덕운. 언덕에 숨어 그 모양을 훔쳐보는 원현의 분노의 눈길. 스님들과 독경하는 지효. 신돈:...... 문득 마음이 편해지는 신돈. 미소같은 것이 떠오른다. 큰스님: 편조야 불길속에 어른거리는 큰스님의 모습. 큰스님: 편조야. 부처님께서도 꿈을 꾸신 게야.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당장 온다고 믿으셨겠느냐. 꿈을 꾸셨겠지. 부처님의 꿈이 아름다우니 우리가 그 꿈을 믿고 의지하는 게 아니겠느냐. 천년 넘게 기다렸으니 천년을 더 기다리지 못할 까닭이 무엇이 있겠느냐 신돈의 얼굴에 불길처럼 번지는 미소. 활활 타오르는 불길. #산길 골분함을 들고 산을 오르는 신돈. 그 모습위에, (*[신돈] 3회에서) - 큰스님을 업고 산을 오르는 신돈의 모습이 걸어간다.- #산의 중간 길 골분함을 안고 산을 올라가는 신돈. - 큰스님을 업고 산을 오르는 신돈.- #산의 정상 골분함을 안고 올라오는 신돈. - 큰스님을 업고 올라가는 신돈. 큰스님: 됐다 (신돈의 어깨를 툭툭치며) 수고했다 큰스님을 내려놓는다. 산아래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산 중턱의 개태사의 모습. 큰스님: 그래 뭘 보고 왔느냐. 신돈:....... 큰스님: 지옥이더냐 신돈: 아닙니다 큰스님 큰스님: 그럼 신돈:...... 큰스님: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보고 싶다고 조르더니 뭘 보고 온 게야 - 골분함을 든 신돈이 마치 생시인 듯 큰스님과 앉았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신돈:........ 빈자리. 신돈:....... 고개를 돌리는 신돈. 그 앞에 펼쳐있는 첩첩산중의 모습. 신돈:....... 그 허공을 향해 큰스님의 골분을 뿌리는 신돈. #개태사의 마당(밤) 고요하다. 원현:...... 어둠 속에서 이글거리는 눈. 법당을 본다. 불빛. 원현:.... 주위를 살피더니 슬금슬금 가는 원현. #동. 법당 안(밤) 불상. 마주하고 앉은 신돈.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명상에 잠겼다. 그 얼굴에 법당문이 열리는 소리. 신돈의 눈망울이 움직이는 듯 마는 듯. 팔랑이는 촛불. 원현이 신돈을 향해 엎드리듯 두 손을 바닥에 짚고 노려보고 있다. 신돈:..... 원현: 개경엔 언제 올라갈 겁니까 신돈:..... 원현: 정말 머리 깎고 중이 되실 작정입니까 신돈:........ 여전히 미동도 않는 신돈. 원현:(피를 토하듯) 개태사 법당에 앉아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신돈:(눈을 감은 채) 내가 내 마음 속의 증오심을 다 버리고 나서 속세로 돌아갈 것이야 원현: 그걸 버려서는 안돼지요 신돈:...... 원현: 힘없는 백성들이 증오심마저 버리면 무슨 힘으로 이 세상과 싸우겠습니까 신돈:........ 눈을 번쩍 뜨는 신돈. 노려보는 원현.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불상 앞으로 가서 향을 올리는 신돈. 원현: 이러니 백성들이 천대를 받는 겁니다. 권문세도가들이 힘으로 누르면 팔자거니 체념을 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선 안 돼지요. 체념하면 안 돼지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가지고 이 놈의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려야지요 신돈:...... 향을 올리고 물러나 절하는 신돈. 원현:..... 노려본다. 절하는 신돈. 원현:(비웃듯 웃으며) 이러자고 세상을 떠돌아다닌 겁니까. 겨우 큰스님한테서 개태사를 물려받고 싶어서 그 요란을 떤 겁니까. 좋으시겠습니다. 노비의 자식 주제에 보우 왕사님한테서 구족계를 받으시고 주지승이 되셨으니 웃어대는 원현. 절하고 또 절하는 신돈의 뒷모습. #동. 마당(밤) 법당 문을 밀치고 튀어나오는 원현. 미친 듯이 웃어대더니 법당을 노려본다. 원현: 부처님의 법으로 세상을 구할 겁니까. 어느 세월에요 (미친 듯이 웃더니)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지요. 힘이 부족하면 내 몸뚱아리로 맞설 겁니다. 예,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서 싸울 겁니다 (다시 웃으며) 좋으시겠습니다 편조스님. 부디 성불해서 극락 가십시오 편조스님 미친 듯이 웃어대는 원현. #강안전의 뜰(밤) 덕녕공주, 온다. 불켜진 전각. 김상궁이 달려와 허리 굽힌다. 덕녕공주: 두 분 전하께선 아직도 수침에 들지 않으셨느냐 김상궁: 예, 마마 덕녕공주: 뭘 하시느라고 #동. 안(밤)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공민왕. #동. 뜰(밤) 덕녕공주:...... 가만히 한숨 내쉬는 덕녕공주. 김상궁: 안으로 드시겠사옵니까 마마 덕녕공주: 아니다 (웃으며) 나눌 말씀이 많으시겠지 돌아서 가는 덕녕공주. 바라보는 김상궁. #동. 안(밤) 문득 붓을 멈추는 공민왕. 공민왕: 편조가 부럽습니다 노국공주:(바라보는) 공민왕: 편조는 돌아갈 곳이 있질 않습니까 쓸쓸한 미소. #개태사의 법당. 안(밤) 신돈:....... 불상을 바라본다. 불상 대신 큰스님이 웅크리고 앉아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다. <신돈 37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