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2회 <신돈> -2회- #남대가의 뒷골목 주점 마당 평상에 걸터 앉아 전대를 풀어 안에 든 돈을 확인하는 신돈. 장정들이 여기저기 터지고 부러진 꼴로 신돈 앞에 엎드려 있다.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는 원현. 신돈:(시침 떼고) 스님. 이리와서 돈이 맞나 확인을 해보시오 원현:(불안해서) 사, 사형 신돈:(장정들에게) 한푼이라도 틀리면 덤으로 다리 몽둥이를 하나씩 더 분질러 놓을 테다 장정: 전대에 들어있는 돈은 한푼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신돈: 자세히 보시오 원현:(보지도 않고) 맞습니다 신돈:(버럭) 이런 죽일 놈들을 봤나. 잔돈 푼은 그렇다치고 은병이 열 두개가 넘었거늘 다섯 뿐이 아닌가 장정: 그, 그럴리가요 신돈: 열 두 개에서 다섯 개를 빼면 일곱이렷다 원현:(당황해서) 사형. 원래 은병은 신돈:(일어나서) 은병 일곱 개를 어디다 감췄는지 당장 내놓지 못할까 장정: 전대엔 손끝 하나..... 신돈: 네놈들이 먹고 마신 술과 고기는 무슨 돈으로 냈단 말이냐. 근간에 부처님 시주함의 돈까지 훔쳐가는 놈들이 있다고 하더니 바로 니놈들이 그 흉악한 도둑들이구나 옆에 떨어진 몽둥이를 집어들고 짐짓 손바닥에 침까지 탁 뱉는 신돈. 장정: 아이구 스님. 여, 여깄습니다 주머니를 뒤져 은병과 엽전을 꺼내는 장정 장정:(옆의 장정들에게) 뭘 하고 있어 이놈들아. 돈들을 꺼내지 않고 장정들, 있는 돈 없는 돈 다 꺼내 장정 앞에 모아놓는다. 장정: 이거면 되겠습니까 신돈:(힐끔 살펴보더니) 또 한번 남의 물건을 훔치면 내가 니놈들 손모가지를 다 꺽어 놓을 것이야. 알았느냐 장정들: 예, 스님 신돈, 돈을 챙겨 전대에 쓸어담는다. 눈치만 보고 있는 장정들. 신돈: 아직도 용무가 남았느냐 장정: 아, 아닙니다요 부리나케 도망치는 장정들. 전대에 담긴 돈을 웃소매에 쑤셔 넣는 신돈. 원현: 잃어버린 돈은 은병 하나 값도 될까 말까 한데 열 두개라고 속였으니 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신돈: 그 동안 개태사 시주함에서 도둑 맞은 돈까지 보충을 한 거니 도둑이라고까지야 할 거 있나. 주인장 부엌에 숨어 있던 사내가 벌벌 떨며 나온다. 신돈: 오랜만에 힘 한번 썼더니 목이 컬컬하구려. 술하고 고기 좀 갖다주시오 사내: 예, 예 스님 얼른 부엌으로 들어간다. 원현: 시장에서 청자 연적을 훔치더니 도둑한데 도적질을 하고, 이번엔 술과 고기까지 먹겠다는 겁니까 신돈: 산 속에 틀어박혀 불도만 닦아서야 어찌 세상을 구할꼬. 부처님께서 중생을 가엽히 여기신 건 카필라의 궁궐을 나와 천민들을 접하신 후의 일이야. 속세의 온갖 악행과 탐욕과 고통을 다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참된 불도를 깨달은 것이니 속세를 모르는 중놈이 어찌 세상을 고행의 바다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말야 (놀리듯) 안 그런가 원현스님 원현: 말씀은 잘 하십니다. 그러니 허구헌날 큰스님한테 종아리를 맞으시지요 신돈: 큰스님이 내가 미워서 종아리를 치시겠나. 사람 되라고 때리시는 거지 (안에다 대고) 주인장 버럭 내지른다. 사내:(안에서) 예, 나갑니다요 술과 고기를 갖고 달려온다. 신돈: 개경인심이 험하다더니 주인장 인심 한번 후하군.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싸겠습니다 벌컥 들이마시고 고기 한점 입에다 처넣는 신돈. 그 때마다 놀래듯 몸을 움칠움칠하는 원현. #부근 골목길 절룩이며 도망쳐오는 장정들. 장정2: 형님. 이대로 물러갈 겁니까 장정:(신음) 장정2: 당장 가구소에 찔러서 그 중놈들을 넘겨버립시다 장정: 그 정도로야 분이 안 풀리지. 이놈들 어디 두고 보자 이를 가는 장정. #남대가의 뒷골목 주점 마당 술과 고기를 먹는 신돈. 불안한 원현. 원현: 편조스님. 그만 마시고 일어나시지요. 남의 눈이 무섭습니다 신돈: 자넨 머리 깎은 중이고 나는 머리 기른 중이니 무슨 상관인가 원현: 그거야 큰스님께서.... 신돈:(술잔 탁 내려놓으며) 큰스님이 내 머리를 깎지 않고 그냥 두시는 까닭을 몰라서 그러시나 원현:..... 신돈: 노비의 자식은 중이 될 수 없다는 부처님의 법이 없으므로 마지못해 구족계를 내리셨으나 행여 그 일이 밖에 알려져 구설수에 오를까봐 비구는 비구되 머리 기른 비구라 다시 잔을 들어 벌컥 들이키고 전대에서 은병 하나를 꺼내 술상에 탁 놓는다. 신돈: 주인장 술과 고기 값이요 사내:(눈이 동그래진다)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신돈: 나 때문에 그 놈들이 술값을 내지 않고 도망을 쳤으니 그 값까지 쳐주는 거요 벌떡 일어나 간다. 사내:(급히 뒤쫓아오며) 스, 스님. 몸조심 하십시오 신돈:(본다) 사내: 스님께서 혼내주신 그 장정들은 덕성부원군의 수하들입니다 신돈: 덕성부원군? 그게 뭐 말라비틀어진 벼슬아치요? 사내: 덕성부원군도 모르십니까? 원나라 황후의 오라버니가 되시는 신돈: 원나라 황후의 오라비란 자가 도둑의 괴수란 말이오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쩍 벌려버리는 신돈. #남대가의 거리 기철이 탄 채여가 온다. 수종들이 난폭하게 사람들을 밀쳐내고 있다. 수종: 물럿거라. 덕성부원군 행차시다 미처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른, 애, 부녀자 할 것 없이 방망이로 후려치고 발길질을 해댄다. 그 바람에 물이 갈라지듯 그 붐비던 인파가 갈라지고 길이 훤히 드러난다. 채여 위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고슴도치처럼 날이 선 수염을 어루만지고 있는 기철. 채여의 좌석은 붉게 칠해져 있고, 가마의 네 귀에는 용머리를 붙이 장대가 꽂혀 있으며, 수십 명의 가마꾼이 메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가마다. #영수전의 뜰 충목왕을 태운 연이 급히 온다. 덕녕공주가 충목왕을 부축해서 안고 있다. 그 뒤를 따라오는 희비 윤씨와 경창부원군. 연이 멈춘다. 전각에서 달려나오는 상궁 나인들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최만생: 뭘 꾸물대고 있느냐. 어서 전하를 안으로 뫼시지 않고 상궁 나인들이 달려와 충목왕을 부축해 안으로 들어간다.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희비의 입가에 미소. #대궐의 길 경창부원군의 손을 잡고 오는 희비. 뒤돌아본다. 아무도 안 보인다. 경창부원군을 번쩍 안아 올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희비. 희비: 내 아드님의 세상이 오게 생겼습니다. #영수전의 방 안 기진해서 덕녕공주의 품에 기대앉은 충목왕. 근심에 차서 바라보는 이제현. 이제현:(조심스럽게) 전하께서 팔관회 의식을 주재하시기는 힘이 드실 것 같습니다 덕녕공주: 아니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팔관회의 조하를 전하께서 직접 받으셔야 합니다 이제현: 마마. 의식을 거행하는 중도에 만에 하나 전하께서 옥체를 가누지 못하기라도 하시면 덕녕공주: 희비의 입가에 감돌던 미소를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전하의 기침이 심해질 때마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이제현: 희비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겠습니까 덕녕공주: 거기까지라니오? 이제현:(난처) 으음 덕녕공주: 전하께서 변을 당하시면 경창부원군이 왕위를 이을 것이니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겁니다 이제현: 으으흠 덕녕공주:(충목왕의 두 손을 꼬옥 잡아쥐고) 몸을 가누기가 힘이 드십니까 충목왕:.....(간신히 끄덕끄덕) 덕녕공주:(더 힘주어) 눈조차 뜨고 있기가 힘이 드신다 그 말씀이십니까 충목왕:....괜찮습니다.....참을만 합니다 어머니 덕녕공주:(손 잡아 흔들며) 녜, 참으셔야 합니다. 내일 아침에 선경전 뜰에서 만조백관의 조하를 받으시고 팔관회의 연회에도 참석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만조백관이 전하께 충성을 맹세하는 술잔을 올릴 것이니 한잔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 술잔을 다 받으셔야 합니다. 아셨습니까? 전하께서 강건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셔야 저들이 불순한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셨습니까 전하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덕녕공주. 겨우 끄덕이는 충목왕. 눈물을 참지 못하고 충목왕을 얼싸안는 덕녕공주.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나직히 한숨 내쉬는 이제현. #동. 복도 발걸음을 죽이고 조용히 물러나오는 이제현. 방문을 닫고 돌아서다 멈춘다. 최만생이 허리를 꺾고 얼굴을 묻듯이 하고 서있다. 이제현: 말조심을 해야 할 것이야 최만생: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익재대감 더 허리를 굽혀보이는 최만생. #선경전의 뜰 팔관회 준비가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선경전을 향해 신하들이 국왕에게 표문을 올리고 절을 하는 연습을 하고 있고, 한쪽에선 악공들이 연습을 하고 있고, 무용수들이 춤사위를 맞춰보고 있다. 환관들은 휘장을 세우느라 법석이고, 궁녀들은 집기들을 나르고 있다.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는 보우. 보우:..... 슬며시 다가오는 이제현. 이제현: 보기 좋다 보우:(보더니 허리 굽혀 보인다) 이제현: 고려의 국운이 다시 일어설 모양입니다. 어느해보다도 성대한 팔관회가 열리게 생겼어요 보우:... 이제현:(멀리서 바라보더니) 서너해....중국을 다녀오셨지요 보우: 예 이제현: 원의 기세가 어떠합니까 보우: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지요 이제현:(보더니) 보우선사께서도 그리보셨습니까? 보우: ....예 이제현:(먼 산 보듯) 전하께서는 오래 살지 못하실 겁니다 보우:(중얼거리듯) 나무관세음보살 이제현: 강릉대군은 만나보셨습니까? 보우:..... 이제현:(보더니) 전하의 아우님 되시는 경창부원군께서는 이제 겨우 열 살이시니 (혀차듯 한숨 쉬고) 정말 보기 좋다. 고려의 국운이 한창 치솟고 있거늘 뒷짐을 지고 어슬렁가는 이제현. 보우: 나무관세음.... 이제현의 뒤에 대고 허리를 급히는 보우. #법왕사. 본당의 마당 지효스님을 따라오는 원현과 신돈. 마당에서 왁자지껄 연등을 만들고 있는 스님들. 지효: 팔관회의 장관은 뭐니뭐니해도 본궐 마당에 연등을 켜고 임금과 신하가 한데 어울려 가무를 즐기는 광경이지요 #별채의 마당 방문을 여는 지효. 지효: 지방 사찰에서 올라오신 큰스님들이 여러분 계셔서 누추하지만 여기서 하룻밤 묵으셔야겠습니다 합장하는 지효. 원현: 고맙습니다 지효스님 마주 합장하는 원현. 지효:(신돈을 힐끔보더니) 헌데 동행하신 분께서는 행색은 스님이신데 머리를 보면 신돈:(얼른 합장하며) 저는 개태사에서 원현스님을 모시고 올라온 편조보살이라고 합니다 지효: 예 편조보살님. 오늘 내일은 팔관회니 입에서 술냄새를 풍기셔도 무방하나 법당엔 출입을 삼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또 한번 합장해보이고 가는 지효. #동. 본당의 마당(저녁무렵) 어스름 어둠이 깔린다. 연등에 불을 켜서 걸고 있는 스님들. #동. 별채의 방 안(밤) 사복을 내던지는 신돈. 원현: 이게 뭡니까 편조스님 신돈: 잔말 말고 어서 갈아입어 원현:(어리둥절해서 보는) 편조: 속세에 나왔으면 속세 맛을 보고 돌아가야지 #동. 뒤뜰(밤) 담밑에 엎드린 신돈. 원현:(사복입고) 편조스님 신돈: 어서 내 등을 밟고 뛰어넘으래두 원현: 도대체 뭘 하시려는 건지 중얼대며 신돈의 등을 밟고 담는 잡는다. 다리가 떨리는지 올라가지 못한다. 순간 신돈이 몸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원현을 담밖으로 내던진다. #동. 담밖(밤) 담 밑으로 떨어지는 원현. 신돈이 몸을 날려 담을 넘어와 사뿐히 내려앉는다. 신돈: 다친 덴 없으신가 원현: 사람을 그렇게 내던지는 법이 어딨습니까 낑낑대며 일어나는 원현. 그 머리 위에 모자를 푹 눌러 씌워주는 신돈. #남대가의 거리(밤) 밤은 밤대로 북적거린다. 여기저기서 폭죽 놀이가 한창이다. 신돈과 원현이 온다. 원현: 어딜 가는 겁니까 편조스님 신돈: 개경이야말로 사람사는 데라고 하더니 극락이 따로 없군 성큼성큼 앞서가는 신돈. 원현: 편조스님 떨어질세라 부리나케 따라가는 원현. #동. 유흥가(밤) 가게 안에서 오가는 취객들을 유혹하는 기녀들. 그 간드러진 웃음소리. #동. 안(밤) 가득찬 손님들.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술마시는 사람들, 노름하는 사람들. 취객 하나가 옆에 앉은 기녀의 허리춤에 손을 집어넣는다. 취객의 손을 뿌리치며 교태를 부리는 기녀. 원현:....... 얼른 눈을 돌린다. 다른 자리의 취객이 기녀의 입에 입을 맞추려고 한다. 원현:..... 고개를 돌리며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원현. 신돈: 눈을 떠서 세상을 봐야지. 그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극락구경을 언제 하려구 원현: 그만 나갑시다 편조스님 신돈: 어허. 그 놈의 스님 소리는 술을 들이키는 신돈. 원현:(눈을 떠서 둘러보며) 이게 지옥이지 어떻게 극락입니까 신돈: 고기는 먹어봐야 고기 맛을 알고, 술은 마셔봐야 술맛을 알고, 계집은 품어봐야 색이 무엇인지 알게 아닌가 (놀리듯) 그래야 나쁜 길로 들어서질 않지. 주인장 손을 흔든다. 주인이 달려온다. 전대에 든 은병을 모두 꺼내 식탁에 놓는 신돈. 신돈: 여기 이쁜 계집으로 골라서 보내주시게 술집의주인: 예. 예. 염려마십시오. 어르신 얼른 은병을 집어들고 달려가는 주인장. 신돈: 아우님. 오늘 밤에 극락세계를 맛보시게 원현:(화나서) 정말 너무하십니다. 사람을 놀려도 유분수지 일어나는 원현. 기녀들이 달려와 원현에게 매달린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원현. 그 바람에 다시 의자에 주저앉는 원현. #명덕태후의 처소. 마당(밤) 김상궁의 안내를 받아 정원을 거쳐 안채로 들어서는 보우. 불켜진 방안. 김상궁: 마마. 스님께서 오셨습니다 명덕태후:(안에서) 뫼시게 김상궁: 예, 마마 (보우에게) 안으로 드시지요 공손히 허리를 굽힌다. #유흥가의 안(밤) 계집을 껴안고 술마시는 신돈. 기가 막혀 바라보는 원현. 옆의 기녀가 살짝 기댄다. 질겁을 해서 물러앉는 원현. 그 모양이 재미있어서 깔깔대는 신돈. #명덕태후의 처소. 안방 안(밤) 명덕태후: 삼년 넘게 원나라에 계시다 환국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선사님을 뵈려고 백방으로 사람을 놓아 기다리다 훌쩍 산 속으로 들어가셨다는 전갈을 받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보우: 그러셨습니까? 명덕태후:(바싹 앉으며) 원에 계실 때 강릉대군을 만나보셨습니까? 보우:... 명덕태후: 한번쯤은 만나 보셨을 것이 아닙니까 보우: 자주는 못 뵙고..... 명덕태후: 어찌하고 계십니까. 내 아드님께서는 보우:.... 가만히 명덕태후를 바라본다. 명덕태후: 지금은 장성한 청년이 되어 계시겠지요 보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연경의 유흥가의 한 방(회상) 취해서 기녀를 양팔에 끼고 앉아있는 공민왕. 안절부절하는 안도치. 보우의 눈치를 살핀다. 공민왕: 우리 어머니를 만나거든 전해주세요. 나는 연경에서 잘 지내고 있다구요. 원의 볼모로 끌려와서 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요. 그저 방 안에 얌전히 틀어박혀서 글공부에 여념이 없다구 전해주세요. 그래야 우리 어머니께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주무실 겁니다 안도치: 대군마님 공민왕: 너 이 놈 도치야. 네 놈은 우리 어머니의 한을 잘 알고 있겠구나. 내 어머님은 아버지와 혼인을 하여 내 형님까지 낳으셨으나, 아버님은 몽골의 공주와 혼인을 한 뒤에 어머니를 대궐에서 내쫓으셨느니라 보우:...... 공민왕: 내 아버님께서는 어머닐 대궐 밖으로 내쫓으신 연후에도 색정이 복받쳐서 밤마다 대궐을 빠져나와 내 어머니를 탐하다가 새벽녘에야 대궐로 돌아가시곤 했다. 그 덕분에 내가 태어난 것이야 안도치: 대군마님 울음이 터지는 안도치. 공민왕: 보우스님. 이 놈이 충복입니다. 이 세상 천지에서 날 위해 울어주는 놈은 안도치 이 놈 뿐입니다 보우: 어머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공민왕:(내지르듯) 스님게서 원으로 수행을 떠난다니까 어머니가 스님을 불러 눈물을 흘리시더이까. 내 아들을 만나서 어머니의 애뜻한 정을 전해달라구요 보우:...... 공민왕: 눈물을 흘리셨겠지요. 허나 스님, 그건 원에 볼모로 끌려간 어린 아들을 위해서 흘리신 눈물이 아닙니다. 내 형님 되시는 충혜왕의 어미면서도 대비가 되지 못하고, 손주 되는 지금 임금의 할머니가 되면서도 여전히 대궐 밖 사가에서 숨죽여사는 신세가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이지요 안도치: 태후마마께서는 대군마님을 공민왕: 그래 태후, 어머닌 태후가 되고 싶은 거야. 태후마마 보우: 나무관세음.... 공민왕: 예. 어머닐 만나시거든 내 모습 그대로 전해주세요. 행여 내 어린 조카들 대신 내가 고려의 국왕이 되는 날을 기다리고 계시다면 꿈을 깨시라구요. 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니 아예 꿈도 꾸지 마시라구요 악쓰듯 웃어대는 공민왕. 안도치: 대군마님 #명덕태후 처소의 안방(밤)(현실) 보우:....... 눈을 감고 있는 보우의 얼굴에 애타게 대군마님을 부르는 안도치의 울음소리. 명덕태후:(그 위에 소리) 장성한 청년이 되셨겠지요 보우:(본다) 명덕태후: 안 그렇습니까 보우선사님 보우: 예.....태후마마 명덕태후:(미소) 보우: 늠름하고 기품 있는 청년으로 장성을 하셨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명덕태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강릉대군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했어요. 어미의 소원을 모른다 할 내 아드님이 아니지요 파안대소하는 명덕태후. #동. 대문 앞(밤) 대문 여는 청지기. 보우를 따라 나오는 김상궁. 김상궁: 개경엔 얼마나 계실 건지요 보우: 팔관법회가 끝나면 돌아가야지 김상궁: 연경 소식은 안환관을 통해서 자주 듣고 있습니다 보우: 마마께서도.....알고 계시는가 김상궁:...... 가만히 고개 저어보이는 김상궁. 보우:.....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연경의 공민왕의 처소. 안(회상) 얼굴의 형태만 있는 그림. 붓을 든 채 멍하니 서있는 공민왕. 보우:..... 그림을 바라본다. 공민왕: 아무리 해도 어머니의 얼굴을 그릴 수가 없어요 보우:..... 공민왕: 눈은 큰지 작은지, 입술은 도톰하셨는지, 콧날은 또 오똑하셨는지.... 보우:..... 공민왕: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이 안나니 고국산천인들 기억이 나겠습니까. 이러다 오랑캐 땅에서 덧없이 죽어가겠지요..... 공민왕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명덕태후 치소의 대문. 앞(밤)(현실) 보우:(문득) 돌아오실 겁니다. 강릉대군께서는 갑자기 훌훌 털 듯 돌아서 가는 보우. 바라보다 기쁨의 눈물을 닦는 김상궁. 어디선가 아이들이 달려나와 폭죽을 터뜨리며 달려간다. 그 폭죽 속을 보우가 간다. #남대가의 유흥가 앞(밤) 가구소의 관리들을 앞세워 장정들이 몰려온다. 문 앞에서 호객하던 기녀들이 질겁을 해서 안으로 도망친다. #동. 안(밤) 들이닥치는 관리와 장정들. 닥치는대로 걷어차고 때려 부수는 장정들. 도망치는 취객들과 기녀들. 술상을 엎고 도박판을 엎어버리는 장정들. 신돈:..... 장정들을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겁에 질려 일어나려는 원현을 잡아당겨 앉힌다. 주인이 관리 앞으로 달려온다. 관리: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아느냐. 성스러운 팔관회 전날 밤이야 주인: 가게문을 열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관리: 이놈이 주인장을 발로 걷어차는 관리. 나뒹구는 주인장. 관리: 가구소에 바쳐야 할 세금이 은병 스무 개 값이거늘 겨우 열 개를 내놓고 장사를 해. 어디 맛 좀 봐라 이놈 관리가 눈짓한다. 다시 때려 부수기 시작하는 장정들. 신돈, 바들바들 떨고있는 원현의 팔을 움켜쥔다. 신돈: 극락구경은 나중에 하고 오늘밤은 삼십 육계 줄행랑부터 놔야겠다 원현의 팔을 움켜잡고 문쪽으로 도망치는 신돈. 장정 하나가 원현의 머리를 잡는다. 장정2: 어딜 도망치는 게야 그 바람에 원현의 모자가 벗겨진다. 얼른 머리를 감싸쥐는 원현. 장정2: 이건 중놈이 아닌가 신돈과 눈이 마주친다. 장정2: 형님. 아까 그 중놈들이요 순간, 신돈이 장정을 내동댕이치고 문으로 도망친다. 장정: 저놈들을 잡아라 우르르 신돈을 쫓는다. #동. 앞(밤) 달려나오는 신돈과 원현. 도망친다. 장정들이 몰려나와 신돈을 쫓는다. #동. 부근 골목길(밤) 도망치는 신돈과 원현. 갈림길이다. 뒤에서 장정들의 고함소리. 신돈이 원현을 다른 길로 밀어버리고 반대쪽 길로 도망친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원현. 장정들이 다가오자 뛰기 시작한다. #동. 다른 길(밤) 장정들이 달려온다. 원현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우왕좌왕하다 옆길로 몰려가는 장정들. 원현이 좌판더미에서 얼굴을 내민다. #동. 대가집의 거리(밤) 달려오는 장정들. 반대편에서도 장정들이 달려온다. 신돈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장정: 분명 이리로 도망쳤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장정. 지붕 위에 신돈이 버티고 서있다. #법왕사. 전경 달빛에 누워 있는. #동. 별채의 방 안(밤) 돌아누워있는 원현. 신돈:..... 힐끔보더니 손가락으로 원현을 쿡 찌른다. 더 돌아눕는 원현. 신돈: 내 덕분에 살았거늘 계집애처럼 토라지기는 원현: 하마터면 극락은커녕 황천 갈 뻔 했습니다 신돈: 망할놈들. 하필이면 오늘 밤에 세금을 걷으러 올 게 뭐람 힐끔보더니 또 한번 원현을 쿡 찌른다. 누운 채 기어서 피하는 원현. 신돈:(놀리듯) 그래도 재미는 있었지요 원현스님 원현: 재미는요 신돈: 처음 만져보는 계집의 살결이 어떻습디까 원현스님. 나긋나긋한 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좋지 않습니까 원현스님 원현:(가만히 눈 깜빡이는) 신돈: 징그럽기만 합니까 원현스님 쿡쿡 찌른다. 갑자기 쿡쿡 웃으며 이불을 뒤집어 써버리는 원현. #동. 앞. 마당(밤) 신돈, 나온다. 두리번거리더니 법당으로 가 법당 뒤쪽에 소피를 본다. 기분 좋게 방뇨를 하는데 웅얼거리는 소리. #동. 법당. 마당(밤) 신돈, 기웃거리며 온다. 신돈:..... 라마승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다. “옴 마니 반메 훔” 마니통을 돌리며 탑을 돌고 있다. 신돈:..... 마치 넋이 나간 듯 바라보고 있는 신돈. 지효:(어느새 다가와) 무슨 소린지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신돈:.... 라마승의 독경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지효: 옴 마니 반메 훔.....자세히 들어보시면 그런 소리가 들릴 겁니다 신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효: 그건 산스크리티어로 라마승들이 읊는 일종의 진언이지요 문득 경탄에 차서 라마승들을 바라보는 신돈. 지효: 저 진언을 많이 외우면 나쁜 기운을 쫓아주고 공덕이 쌓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들고 돌리고 있는 통은 마니통이라고 하는데, 그 통 속에는 경전이 적혀 있습니다. 저 통을 십만 번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신돈:..... 바라본다. 라마승들의 손에서 돌고 있는 마니통. 경전소리. #동. 별채의 마당(밤) 지효와 신돈이 온다. 신돈:(감탄하듯) 라마교는 우리 불교와는 다른 게 많습니다 지효: 예, 많지요. 무엇보다 세상만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어요. 라마교에서는 미물의 짐승이나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 영이 깃들어 있다는 발상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신돈: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도 영이 있다? 지효: 그만 주무시지요. 내일은 팔관회 준비로 일직 일어나셔야 할 겁니다 합장하고 가는 지효. 신돈: 지효스님 지효:(본다) 신돈: 술냄새를 풍겨서 죄송합니다 지효:....... 빙긋 웃고 다시 합장하고 가는 지효. 그 뒤에 합장하며 절하는 신돈. #동. 종루(새벽) 아침 공양을 알리는 종을 치는 스님. #동. 큰방 아침 공양을 하기 위해 스님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중앙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법왕사에 상주하고 있는 스님들이 위에서부터 차례로 앉고, 오른쪽에는 수행승들이 앉는다. 그 속에 편조와 원현이 포함되어 있고, 끝자리에는 라마승도 끼어 있다. 한 스님이 죽비를 세 번 치고, ‘하발게’, ‘회발게’, ‘전발게’를 창한다. 그 창에 맞춰 바루를 펴는 스님들. 밥그릇, 국그릇, 물그릇, 찬그릇을 차례차례 제 위치에 놓는다. 젊은 스님들이 밥통, 국통, 물통, 찬통을 들고다닌다. 자신이 먹을만큼 더는 스님들. ‘창식게’, ‘수식게’에 이어 ‘봉발게’가 끝나자, 모든 스님들이 밥그릇을 들어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다시 죽비 소리가 세 번 울리자, 비로소 묵언 가운데 식사가 시작된다. 편조:....(라마승을 연신 힐끗거린다) 라마승:..... 조용히 공양을 하고 있는 라마승들의 모습. #법왕사. 앞(아침) 스님들이 연등을 들고 독경을 합창하며 법왕사를 빠져나온다. 신돈과 원현도 끼어있다. 신돈, 마니통을 열심히 돌리고 있는 라마승들을 힐끔거린다. #남대가의 거리 스님의 행렬. 사람들이 스님들 가는 길에 꽃을 뿌린다. 점점 높아지는 독경소리. 신돈도 열심히 독경을 읊는다. #광화문. 앞 대궐문이 열렸다. 스님들의 행렬이 와서 안으로 들어간다. 신돈:...... 들어가다 문득 성벽 앞에 엎드려 있는 낙타를 본다. 낙타를 바라보는 신돈의 눈과, 천천히 되새김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낙타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그 위에, “천세. 천세. 천천세”를 선창하는 소리. #선경전의 뜰 “천천세”를 선창하며 두 손을 쳐드는 이제현. 부복했던 조신들이 몸을 일으키며 “천천세”를 소리 높여 외친다. 선경전 문 앞에 휘장을 치고 앉은 충목왕. 바로 옆에 덕녕공주가 걱정스럽게 충목왕을 바라본다. 좌우에 경창부원군과 희비 윤씨 등 왕실 가족이 늘어서 있다. 최만생과 환관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충목왕을 에워싸고 있다. 기철은 누대 위에 큼지막한 의자에 거드름을 피우며 앉아있다. 의자 뒤엔 기원이 기철을 호위하듯 제법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피며 서있다. 주악이 울리기 시작한다. 중앙의 관리와 지방관리들이 차례차례 나와서 충목왕에게 표문을 올리고 인사를 올린다. 덕녕공주, 충목왕을 바라본다. 자꾸만 눈이 감기고 쓰러지려고 한다. 덕녕공주:(얼굴이 가까이 가져가) 조금만 참으세요 전하. 신하들이 전하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자린데 전하께서 약한 모습을 보이셔야 되겠습니까 충목왕:..... 깊은 숨 내쉬고 자세를 바로하는 충목왕. 덕녕공주: 잘 하십니다 표문을 올리는 신하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덕녕공주. 표문을 올리러 계단을 올라가는 조신들을 바라보고 서있는 이제현. 곁에 서있던 염제신이 혀를 찬다. 염제신: 저런 고얀 일이 있나. 익재대감, 지 놈이 뭐라고 전하께 표문을 올리는 자리에 의자까지 내놓고 앉아있는 겁니까 이제현:...... 기철을 본다. 뒤에 서있는 기원과 히히덕거리고 있다. 염제신: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번 팔관회가 끝나면 단단히 문제를 삼아야겠어요 이제현: 도첨의평리께서는 모른 척 하시지요 염제신: 국왕을 멸시하는 기철의 버르장머리를 바로 잡지 않고 어찌 나라의 기강이 서겠습니까 이제현: 지금은 때가 아니니 드리는 말씀이지요 염제신: 기씨 일가의 행패가 십 년 넘게 계속됐어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된 단 말씀입니까 이제현:(웃으며) 백 년이야 넘겠습니까? 염제신:(못마땅해서 더 혀를 차는) 기원이 기철의 귀에 귓속말을 건넨다. 기원: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형님 수염을 뽑듯이 만지작거리며 충목왕을 보는 기철. 기침을 콜록이고 있는 충목왕. 땀을 닦아주고 있는 최만생. 그 모양을 보며 미소짓던 희비 윤씨가 기철을 본다. 기철과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는 희비 윤씨. 입맛을 쩝쩝 다시는 기철. 기원: 희비와 손을 잡으시죠 형님 기철:..... 기원: 경창부원군이 아직 어린 아이니 형님 마음대로 주무를 수가 있을 겁니다 기철: 두고보자 길게 의자에 두러눕듯 뻗는 기철. 승려들과 서있던 원현이 신돈을 슬며시 잡아당긴다. 원현: 편조스님. 저기 누대 위에 의자 놓고 앉아있는 사람이 덕성부원군이랍니다 신돈: 덕성부원군? 원현:(답답해서 뭐라고 하려는데) 신돈: 아, 그 도적의 괴수 신돈의 큰 소리에 승려들이 돌아본다. 원현: 편조스님. 팔관회고 뭐고 행사가 끝나면 진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야겠어요 옷깃을 잡아당겨 회랑 쪽을 가리킨다. 기철의 사병들이 제멋대로 떠들어대고 있다. 장정패거리들도 섞여있다. 신돈:......(눈이 번쩍) 원현: 밖에서는 덕성부원군이 진짜 임금이라고 떠든답니다. 원나라 황제의 두 번째 부인이 덕성부원군의 누이니 그 세도가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덕성부원군의 사병이나 다름 없는 저놈들을 건드렸으니 이번에 잡히면 살 길이 막막하지 않겠습니까 신돈: 지놈의 세도가 아무리 커도 중이야 죽이겠느냐 원현: 우릴 벌레만큼이나 여기겠습니까 신돈: 그럼 밟아보라지 원현: 편조스님 신돈: 올라가신다 보우가 누대로 올라가고 있다. 원현: 지금 당장 도망칩시다 신돈: 쉬잇. 보우선사의 설법이나 들어보자 보우가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다. 덕녕공주:(최만생에게) 보우가 전하께 절을 올리면 전하께서 맞절을 올려야 하느냐 최만생: 보우선사는 국사나 왕사가 아니시니 맞절을 올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허나 자리에서는 일어나셔야 할 것이옵니다 보우가 옥좌와 마주서더니 절을 올린다. 덕녕공주: 일어나서 절을 받으세요 충목왕:....... 움직이지 못한다. 최만생이 얼른 충목왕을 부축해 일으킨다. 기철:(뒤에다 대고) 연경에 있는 강릉대군은 어떻겠느냐 기원: 강릉대군의 어미가 홍씨 아닙니까 형님. 워낙 드센 여자라 기철: 희비는 만만하고? 기원: 희비야 형님 수중에 있지요 기철:...... 희비를 본다. 살랑살랑 웃고 있는 희비. 기철: 으음 끄응 신음하며 콧털을 심하게 잡아당기는 기철. 보우: 사람마다 본성에 있는 영각(靈覺)은 본래 생사가 없고, 고금에 신령하고 밝으며, 깨끗하고 묘하며, 안락하고 자재하니 이것이 어찌 무량수불(無量壽佛)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마음을 밝힌 이를 부처라고 하고, 이 마음을 설명한 것을 교라고 합니다. 오직 마음이 정토이고 우리의 성품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 곧 부처님의 몸으로 나타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아미타불입니다. 청정하고 묘한 법신은 일체 중생의 마음속에 두루 있는 것입니다. 두 눈을 감고 옥좌에 기대있던 충목왕의 고개가 떨어진다. 황급히 잡는 덕녕공주. 덕녕공주: 전하. 조금만 더 참으세요 충목왕:..... 겨우 눈을 떠서 본다. 덕녕공주: 에미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충목왕:...... 겨우 자세를 바로하는 충목왕. 원현:(신돈 귀에다) 보우선사의 법력이 대단하다고 하더니 설법은 그저 그렇습니다 신돈:..... 말없이 보우를 응시한다. 보우: 그러므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이 셋이 차별이 없다고 하였고, 또한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니 마음 밖에 부처는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다고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상공계서 진실로 염불하시려면 다만 바로 나의 본성이 아미타임을 염하여 온 종일 모든 행위에서 ‘아미타불’의 명호를 마음과 눈앞에 두어서 마음과 눈앞의 부처의 명호가 한 덩어리가 되어 마음이 한결같이 이어지고 생각 생각이 매하지 않도록 하되 때때로 ‘생각하는 이것이 누구인가.’ 하고 깊이 돌이켜 보도록 하십시오. 오래오래 하여서 성공하면 홀연히 어느 때에 마음 생각이 끊어져 아미타불의 참 몸이 뚜렷이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옛부터 ‘움직이지 않는 것이 부처’라고 한 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벌떡 일어나는 보우. 허리를 꺾고 빠르게 물러난다. 덕녕공주가 최만생에게 눈짓한다. 최만생: 풍악을 울려라 당황하는 악사들. 최만생:(악대로 달려가) 뭘하고 있느냐. 어서 풍악을 울리라고 하질 않느냐 서둘러 풍악을 울리는 악사들. 최만생이 환관들에게 눈짓한다. 재빨리 충목왕을 안 듯이 부축해서 선경전 안으로 옮긴다. 염제신:(그 모양을 바라보더니) 전하의 환후가 저와 같으니 기철이 더욱 미처 날뛰겠습니다 이제현:........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이제현. #선경전의 안 용상에 충목왕을 눕혀 무릎에 안고 울고 있는 덕녕공주. 우왕좌왕하고 있는 환관들. 최만생: 어의를 불러오너라. 당장 어의를 불러오지 못하겠느냐 #선경전의 뜰 무희들의 춤이 시작됐다. 궁인들이 사방에 술상을 나르고 있다. 먹고 마시고 떠드는 조정 대신들과 지방관리들. 스님들은 사방에 연등을 달고 있다. 연등을 다는 둥 마는 둥 장정들의 눈치를 살피는 원현. 그러다보니 신돈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해서 신돈을 찾는 원현. #법왕사. 본당의 마당 보우가 온다. 그 뒤를 미행하듯 따라오는 신돈. 법당 안으로 들어가려던 보우가 걸음을 멈춘다. 몸을 숨기는 신돈. 보우:...... 힐끔 눈길을 주더니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신돈:..... 그런 보우를 바라본다. 이윽고 독경하는 보우의 낭랑한 목소리가 법당 안에서 흘러나온다. #선경전의 뜰 스님들의 ‘영산제’ 범패와 춤사위가 이어진다. 원현은 장정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하다. #법왕사. 본당의 마당 신돈:.... 법당을 넋 잃은 사람처럼 바라보는 신돈. 보우의 낭랑한 독경소리. #동. 법당. 안 독경하는 보우. 그 반듯한. #선경전의 뜰 연희가 더욱 무르 익었다. 염제신, 누대 위로 온다. 기철이 한상 잘 차려놓고 먹고있다. 기철: 앉으시지요 도첨의평리대감 염제신:.....(바라보더니) 하실 말씀이 기철: 상국의 재촉이 빗발 같습니다 염제신: 상국이라니오 기철:(힐끔 본다) 염제신: 그 말씀이 고려를 낮추고 원을 높이는 말이라면 고려의 신하가 내놓을 말은 아니지요 기철: 으으음 (킹킹거리더니) 매 년 연경에 올리던 공물은 그렇다치고 시급한 것이 공녀 문제올습니다 염제신:(찌푸리는) 기철: 대감께서도 아시겠지만 원의 황실은 물론 고관대작들까지 제일 반기는 것이 고려에서 올리는 어여쁜 처녀들이 아니겠습니까 염제신: 오늘 같이 좋은 날 하필이면 그런 수치스런 기철:(식탁에 발을 턱 올려놓으며) 이번엔 도첨의평리대감께서 나서주셔야겠습니다 염제신:......(신음) 기철: 이달 안에 열 네 살에서 열 여섯에 이르는 처녀들을 백 오십은 모아주셔야겠습니다 염제신:(분노에 차서) 매년 원에 끌려가는 고려의 처녀들이 수백에 이르는 터라 양갓집 규수는 물론하고 여염집의 처녀까지 산으로 도망을 치고 심지어는 목을 매는 사례까지 있소이다. 덕성부원군께서도 그런 실정을 알고 있으면서 아직도 부족하다고 하시는 게요 기철:(싱글대며) 난들 좋아서 하는 일입니까. 상국의 분부가 하도 지엄한지라서 염제신: 나는 못하니 덕성부원군께서 직접 하시구려 돌아서 가버리는 염제신. 기철:(혀를 차더니) 늙은 것이 명을 재촉하기는 술상을 걷어차버리는 기철. #법왕사. 마당(저녁) 어둠이 깃들고 있다. 법당 안의 독경소리. 신돈:..... 법당을 향해 무릎 꿇고 앉아있다. #선경전의 뜰(저녁) 연등을 밝히고 있는 스님들. 여기저기서 환호하는 관리들. 원현:...... 장정을 본다. 취해서 웃고 떠든다. 연등에 불을 지피다 슬며시 빠져나가는 원현. #남대가의 거리(밤) 폭죽이 터진다. 연등이 불을 밝혔다. 남녀노소의 흥겨운 물결. 그 속을 원현이 신돈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휩쓸려 가고 있다. #법왕사. 마당(밤) 법당에서 나오는 보우. 보우:.... 바라본다. 신돈:.... 무릎 꿇고 앉아있다. 보우: 세상을 구하겠다 했느냐 신돈:...... 보우:(버럭) 세상을 구하겠다고 했느냐 부릅뜬 보우의 눈. #남대가의 거리(밤) 연등과, 더욱 요란하게 터지는 폭죽과, 인파와, 그 속을 헤메고 있는 원현. 눈물이 나도록 무섭다. #법왕사. 마당(밤) 신돈을 노려보는 보우의 눈. 무릎 꿇고 보우를 바라보는 신돈의 고요함. 그 고요한 법당의 뜰 위 밤하늘에도 폭죽이 솟구쳐 오른다. 그 불꽃. <2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