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3회 <신돈> -3회- #법왕사의 마당(밤) 보우:(두 눈 부릅 뜨고) 세상을 구하겠다고 했느냐? 신돈:......(바라보는) 보우:(버럭) 부처님께서도 구하지 못한 세상을 니 놈이 구하겠다는 것이냐 신돈:(황급히 엎드리며) 보우 선사님께서는 득도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보우:.....(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득도? #남대가의 거리(밤)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인파에 휩쓸려가고 있는 원현. 좌대 위에 올라서서 사방을 감시하고 있는 장정들의 모습이 보인다. 원현:....... 마른침 꿀꺽 삼키고 몸을 낮춰 인파 속에 몸을 숨기는 원현. #법왕사의 마당(밤) 신돈:(엎드려) 부디 조금만 가르쳐주십시오. 스님께서 세상 이치를 깨닫고 나니 세상이 어찌 달라 보이셨는지 조금만 가르쳐 주시면....... 슬며시 보우를 훔쳐보던 신돈이 흠칫 말을 멈춘다. 보우:....... 신돈을 바라보는 측은한 눈빛. 신돈:..... 문득 두려움을 느끼며 납작 엎드리는 신돈.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치솟는다. #남대가의 거리(밤) 장정들이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며 인파를 헤치며 다닌다. 원현:...... 가까이 다가오는 장정들. 얼른 길가의 연등을 떼어내서 얼굴을 가리고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원현. #법왕사. 마당(밤) 엎드려 있는 신돈. 지효:(소리) 그만 일어나시지요 신돈:...... 고개 쳐들어 본다. 지효가 웃으며 바라보고 서있다. 지효: 보우선사님께서는 진즉에 자리를 뜨셨습니다 신돈:...... 일어나서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터는 신돈. 신돈에게 합장해보이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는 지효. 신돈:(무안해서) 팔관 법회는 잘 끝났습니까 대꾸없이 법당 안으로 들어가는 지효. #동. 법당 안(밤) 불전을 정리하는 지효. 신돈:(밖에서) 지효스님은 남의 말을 엿듣는 게 취미신가 봅니다 지효:..... 빙긋 미소 짓고 불전에 향을 피워올린다. #동. 마당(밤) 원현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신돈을 보더니 빨리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별채로 달려가는 원현. #동. 별채의 마당(밤) 방 안에서 행장을 꾸리는 원현. 신돈:(마루에 걸터 앉아) 이 밤중에 어딜 가시려구 원현: 말두 마십시오. 덕성부원군의 사병들이 혈안이 돼서 우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오늘 밤 안으로 도성을 빠져나가야 되겠어요 신돈:..... 쪽마루에 팔베개를 하고 벌렁 누워버린다. 원현: 뭘 하고 계십니까. 서두르세요 편조스님 신돈: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죄는 그 놈들이 졌는데 도망은 왜 우리가 갑니까. 나는 법왕사에 며칠 더 묵으면서 개경 구경이나 실컷 하고 내려 갈려네 원현: 편조스님 신돈:(벌떡 일어나며 놀리듯) 원현스님. 극락 구경이나 한번 더 갑시다. 어제는 맛만 봤으니 오늘은 본격적으로 원현:(정말 화나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사람을 놀릴 기분이 나십니까? 정말 너무 하십니다 #남대가의 거리(밤) 비명을 내지르며 피하는 사람들. 기마병들이 횃불을 들고 달려오고 있다. 기철의 사병들이 사람들을 골목으로 처넣는다. 비명을 지르며 골목으로 도망쳐오는 사람들. 짐을 잔뜩 들고 눈이 둥그래서 바라보는 원현. 사람들과 부딪혀 안고 있는 물건들을 떨어뜨린다. 허둥지둥 다시 집어드는 원현. 원현: 편조스님. 좀 도와주세요 신돈을 찾으며 짐을 주워드는 원현. 그 짐들을 밟고 도망치는 사람들. 신돈:...... 큰 길을 바라보고 있는 신돈. 기철의 채여가 달리듯 오고 있다. 기원이 말을 타고 호위한다. 말없이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후려치며 길을 열고 있는 수종들과 사병들. #광화문의 앞(밤) 기철의 채여가 달려온다. 급히 성문을 여는 군사들. 안으로 들어가는 기철의 채여. #선경전의 뜰(밤) 문이 열리고 채여가 들어온다. 기원: 대궐 문을 모두 잠궈라. 내 허락 없이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들여서는 안될 것이야 대문이 급히 닫힌다. #나성의 성문. 안(밤) 아우성치며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사람들. 그 인파에 섞여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신돈과 원현. 어둠을 뚫고 달려오는 군마. 장교: 뭘하고 있느냐. 성문을 잠그지 않고. 상부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도성 출입을 금한다. 어서 성문을 잠궈라 군졸들이 사람들을 밀치고 성문을 닫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성문 안과 밖으로 갈라진다. #동. 성문 밖(밤) 아우성치며 성문 밖으로 삐져나오는 사람들 틈에 신돈과 원현이 끼어 있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원현. 성문이 닫힌다. 원현: 하마터면 꼼짝없이 성 안에 갇힐 뻔 했습니다 신돈:(싱글거리며) 도성 안에 무슨 변이 생겼나 본데 원현 스님 덕분에 구경도 못하게 생겼네 원현: 구경이 다 뭡니까.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신돈:...... 싱긋 웃으며 성문을 뒤돌아보는 신돈. 굳게 잠긴 성문. #강녕전의 복도(밤) 어의들이 엎드려 의서를 펴놓고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다. 어의들을 귓속말을 엿들으려는 듯 번뜩이는 최만생의 눈빛. #동. 안(밤) 혼절해서 누워있는 충목왕. 어의가 새의 솜을 충목왕의 코에 갖다댄다. 떨리는 손. 지켜보는 덕녕공주. 윗목에 희비윤씨가 경창부원군을 무릎에 앉혀놓고 히죽 웃고 있다. 새의 솜이 가늘게 떨린다.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어의. 덕녕공주: 숨이 계시느냐 어의: 예, 마마 덕녕공주:(울부짖듯) 전하께서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어의: 죽여주시옵소서 마마 납작 엎드려 바들바들 떠는 어의. #동. 뜰(밤) 최만생이 급히 나온다. 서성대던 기철이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급히 오는 최만생. 기철: 어찌 됐느냐 최만생: 숨은.......계신 듯 하옵니다 기철: 얼마나 사시겠느냐 최만생: 어의들 말로는 백약이 무효라 하옵니다 기철:...... 전각을 바라본다. 전각의 불빛. 덕녕공주:(안에서 소리) 일어나셔야 합니다. 이제 겨우 열 두 살이 아니십니까 기철: 며칠은 더 사셔야지. 아무렴 소리없이 웃는 기철. #광화문의 앞(밤) 염제신: 이놈들 뭘하고 있는 게야. 어서 궐문을 열지 않고 꼼짝 않는 궐문. 서성거리는 대신들. 염제신:(이제현에게) 익재대감. 궐 안에 변이 난 모양인데 이대로 두고만 계실 겁니까 이제현:(한숨) 염제신: 기철이 이놈이 대궐 문을 잠그고 지 마음대로 국왕을 세울 작정입니다 이제현:(한숨만) 염제신: 기철이 경창부원군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의 전하께서 연소하시어 기철이 섭정이라도 된 양 국정을 좌지우지했거늘 하물며 열 한 살밖에 안 된 경창부원군이 보위에 오르면 기철의 횡포가 오죽하겠습니까. 막아야 합니다 익재대감.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이제현: 도첨의께선 무슨 대안이라도 있으십니까 염제신: 연경에 있는 강릉대군을 모셔와야지요. 강릉대군이 장성했으니 능히 국정을 감당하고도 남을 겁니다 이제현: 강릉대군이라....... 염제신의 눈치를 보며 짐짓 한숨 내쉬는 이제현. #강녕전의 뜰(밤) 희비 윤씨가 경창부원군의 손을 잡고 댓돌을 내려서고 있다. 헛기침하는 기철. 윤씨:(슬며시 지나치며) 얼마나 더 사시겠습니까. 기껏해야 한 달? 기철:(킁킁거리듯 헛기침 하는) 윤씨: 나는 덕성부원군만 믿습니다 경창부원군의 손을 잡고 교태를 부리듯 미소를 흘리며 가는 윤씨. 여전히 코털을 뜯으며 킁킁거리는 기철. #명덕태후의 처소. 안방(밤) 명덕태후: 무슨 핑계를 대시든 익재대감께서 연경엘 다녀오셔야 겠습니다 이제현:(신음) 명덕태후: 경창부원군의 나이 이제 열 한 살입니다. 금상의 뒤를 이어 경창부원군이 왕위에 오르면 내 아드님께선 영영 이제현: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합니다. 금상의 환후가 오늘 내일을 장담할 수가 없으니 명덕태후: 기황후를 만나 담판을 지으세요 이제현: 기철이 대궐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기철의 의중에 누가 들어 있느냐가 명덕태후:(강하게) 익재대감. 기철은 기황후의 의중을 따르게 돼 있어요. 밖에 김상궁 있느냐 김상궁:(밖에서) 예, 마마 명덕태후: 가지고 들어오너라 방문이 열리고 김상궁이 붉은 천에 싼 작은 함을 들고 들어온다. 명덕태후 옆에 놓고 물러간다. 명덕태후: 내가 평생 모은 패물입니다 서둘러 보자기를 풀고 함을 연다. 각종 패물이 쏟아져 나온다. 명덕태후: 이만하면 기황후의 환심을 사고도 남을 겁니다 이제현:(신음) 명덕태후: 익재대감께서 연경에 다녀오실 동안 기철은 따로 불러 인사를 해놓겠습니다. 익재대감께서는 기황후의 내락만 받아오세요 또 한번 앓듯이 신음을 내뱉는 이제현. #어느 계곡 신돈이 옷을 벗어던지고 헤엄을 치고 있다. 물가에서 손에 물을 적셔 얼굴을 닦고 있는 원현. 신돈: 원현 스님 안으로 들어오시게. 개경에서 묻힌 속세의 때를 깨끗하게 씻고 돌아가야지 안 그랬다간 큰스님이 냄새를 맡고 원현스님 살가죽을 벗기겠다고 덤벼들 걸세 놀리듯 웃어대며 물장난 치는 신돈. 원현:(피하지 않고) 대체 편조스님은 무슨 원한이 있길래 보우선사님을 그렇게 괴롭히십니까 신돈: 보우선사를 괴롭히다니 원현: 보우선사라고 세상을 구할 뾰족한 방책이 있겠습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만 해대니 신돈: 보우같은 자에게 그런 묘안이 있을 리가 없지 원현:(어이없어 본다) 신돈: 고려의 불교는 보우 같은 출가한 귀족들의 자손들이 주무르고 있네. 자네나 나같은 천민 출신은 승복을 입고 있을 뿐 사찰의 노비나 다를 게 없지 원현: 그거야 신돈: 도대체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중놈이 몇이나 있다고 생각하나. 보우를 보게. 명문대가집 자손으로 태어나, 불가에 들어가 참선을 한답시고 산 속에 들어가 고행을 하는 시늉을 몇 년 하다가, 원나라에 가서 주색질이나 진탕 일삼다 돌아와서는 (구역질하는 시늉하며) 득도를 했습네....그런 연후 대궐을 드나들며 왕족의 비위나 맞추다가 왕사나 국사의 자리에 올라 거드름이나 피우고....대체 그런 자들의 머릿 속에 뭐가 들어 있을 것 같은가 원현:..... 신돈: 백성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고려는 원의 속국이 되어 산천초목까지 착취를 당하고 있는 판에 마음에도 없는 부처님 설법이나 주둥이에 담는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느냐 말야 원현: 그러면 편조스님은 세상을 구할 묘안이라도 갖고 계시는 겁니까 신돈: 물론이지 원현:(눈이 둥그래져서) 그게 뭡니까 신돈: 뒤집어 엎어버려야지 이 놈의 세상을 물속으로 자맥질하듯 들어가버리는 신돈. #어느 길 신돈과 원현이 온다. 옆길로 접어드는 신돈. 원현: 편조스님. 이쪽 길로 가야 합니다 대꾸없이 가는 신돈. 원현: 편조스님 반대편 길을 바라보다 다시 신돈 쪽을 보는 원현. 신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원현: 편조스님 당황해서 신돈이 간 길로 부지런히 달려가는 원현. #어느 숲 길 숨가쁘게 쫓아오는 원현. 여전히 신돈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불안해지는 원현. 마른침 삼키고 달려가려는데 원현의 어깨를 움켜쥐는 손. 흑! 숨이 막히는 원현. 신돈: 천천히 가시게 원현: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놀랜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휴우 내쉬는 원현. 원현: 대체 어딜 가려고 그러십니까 돌아보는 원현. 신돈이 없다. 놀래는 원현. 두리번 거린다. 저만치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신돈. 원현: 편조스님. 개태사 가는 길은 남쪽인데 자꾸 동쪽으로 가시면 어떡합니까 신돈: 개경까지 올라왔으니 금강산 구경은 하고 가야지 훌쩍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신돈. 원현: 편조스님. 같이 가요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언덕길을 올라가는 원현. #다른 계곡 원현, 언덕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둘러보는 원현. 신돈이 보이지 않는다. 숨이 차서 털썩 주저앉는 원현. 멀리서 들짐승의 울음 소리. 놀래서 후다닥 일어나는 원현. 숲 속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 원현:(화나서) 자꾸 사람을 놀리면 나 혼자 개태사로 돌아갈 겁니다 숲을 둘러본다. 원현:(입에다 손 대고) 어디 있습니까 편조스님. 자꾸 이렇게 날 골탕 먹이면 큰스님께 일러바칠 겁니다 신돈의 웃음 소리. 사방을 둘러보는 원현. 신돈이 바위 위에 우뚝 서있다. 반가워서 달려가려는 원현. 신돈, 사라진다. 둘러보는 원현. 신돈이 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닦고 있다. 반가운 원현. 사라지는 신돈. 그러더니 신돈의 모습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원현:...... 어지럽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신돈:(소리) 뒤집어 엎어야지. 이 놈의 세상을 눈을 꼬옥 감아버리는 원현. 신돈:(소리) 눈을 떠서 날 보시게 원현:..... 실눈을 떠서 소리 나는 쪽을 본다. 바로 곁에 신돈이 앉아있다. 계곡 아래 마을 쪽을 바라보고 앉은 신돈. 원현, 망설이다 신돈의 팔을 꽉 잡아본다. 분명 신돈이다. 신돈: 부처님께서 천한 세상으로 나오신 이유가 바로 그거지. 세상을 뒤집어엎으려고 말야 원현:(화나서) 저는 가끔 편조스님이 무섭습니다 신돈:(본다).......(빙긋이 웃는다) 원현: 내가 편조스님 때문에 큰스님한테 얼마나 야단을 맞았는지 아십니까. 큰스님께선 편조스님이 부리는 요술을 다 알고 계십니다 신돈: 요술? 원현: 허공을 날고 안광으로 바위를 쪼개고 여기저기 나타났다 사라지고 한 걸음에 십리 길을 가는 것이 요술이 아니고 뭡니까 신돈:(웃으며) 그건 내 요술이 아니라 자네의 환상일세 일어나는 신돈. 원현: 내 환상이라니오 신돈: 내가 허공을 날아오른 것이 아니라 내가 허공을 날아오르는 모습을 자네가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헛것이 보이는 거야. 가세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신돈. 원현: 세상을 뒤집어 엎겠다구요? 솥뚜껑을 뒤집어 놓는다고 달라질 게 뭡니까. 솥뚜껑은 여전히 솥뚜껑이지요 못들은 척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신돈. #마을로 가는 길 신돈, 앞서 온다. 입이 부어서 투덜거리며 따라오던 원현이 돌부리에 발이 채였는지 어이쿠! 하며 꼬꾸라진다. 신돈:(보더니) 아이구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두 손을 내밀고 달려간다. 원현:(한 손으로 발가락을 움켜쥐고 다른 손을 내저으며) 내버려두세요 신돈:(아랑곳 없이 달려가 길 위에 솟구쳐 나온 돌부리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스님이 보살님께 화풀이를 했습니다. 본성은 착한 스님이니 보살님께서 이해를 해주시지요 돌부리에다 대고 꾸벅 절하는 신돈. 원현:(기막혀) 돌에 걸려 다친 건 내 발가락인데 어디다 대고 사과를 하시는 겁니까 신돈: 돌부리를 걷어찬 건 원현스님의 발가락이지 움직이지 못하는 돌부리가 원현스님의 발가락을 걷어찼겠냐? 원현: 아이구 그만 두십시오. 편조스님하고 말다툼을 해봤자 내가 무슨 수로 편조스님의 요설을 당해내겠습니까......어이구 발가락이 아파 쩔쩔 매는 원현. 그 옆에 털썩 주저앉는 신돈. 신돈: 법왕사에서 만난 라마승이 세상에 천한 것이 없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네 신을 벗고 발가락에 입김을 후후 불어대는 원현. 신돈: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게도 영혼이 있고 귀한 것이니 소중히 여기라 하였네 원현:.......(본다) 신돈:..... 가만히 돌부리를 내려다 보던 신돈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 그러더니 불쑥 치미는 눈물을 지우려는 듯 벌떡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는 신돈. 원현: 왜 그러십니까 편조스님 신돈:....... 원현: 돌멩이 때문에 눈물을 다 흘리시고 편조스님 답지 않습니다 다시 발가락 쓰다듬는 원현. 신돈:(갑자기 부르짖는다) 예. 천하구 말구요. 나보다 천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놀래서 보는 원현. 부릅 뜬 신돈의 두 눈. #개태사. 부근 길(회상) 어린 신돈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땅바닥에 처박는 어머니. 어머니: 이놈아. 네 놈이 이 돌멩이보다 귀하냐. 네 놈은 오가는 사람마다 밟고 다니는 이 돌멩이보다도 더 천한 놈이여 땅에 얼굴이 처박힌 채 입 꽉 다물고 버티는 어린 신돈. #개태사. 사전의 농가 뒤 안(회상) 어린 신돈을 끌고 오는 어머니. 어린 신돈을 오물통에 처박으려고 하는 어머니. 버둥거리는 어린 신돈. 어머니: 니 놈은 똥보다도 못한 천 것이여. 똥은 썩어서 거름이 되지만 니 놈은 죽어도 거름으로도 쓰지 못하는 쓸모 없는 천 것이여 거름통에 어린 신돈의 얼굴을 처박는 어머니. 버둥거리는 어린 신돈. #동. 부근 냇가(밤)(회상) 냇물에 얼굴을 씻고 있는 어린 신돈. 훌쩍훌쩍 운다. 어머니: 어디서 울음 소리를 내는 게야. 짐승보다 못한 놈이 사람이나 흘리는 눈물을 흘리는 게 가당한 일이냐 이놈 속이 상해 신돈을 때리고 또 때리는 어머니. #개태사의 부엌(밤)(회상) 아궁이에 군불을 집어 넣는 어머니.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주먹밥을 움켜쥐고 입에 처넣고 있는 어린 신돈. 어머니: 노비라고 다 같은 노비가 아녀. 팔자가 좋은 놈은 대갓집 노비로 태어나 평생 배 안 곯고 간혹 잔칫상에 올라갔다 남은 고기덩어리도 몇 점 얻어먹다 죽지만, 에미 같은 절간의 노비는 풀뿌리로 연명하기 일쑤고 흉년이 들면 뱃창시가 달라붙어서 피를 토하다 죽기 마련이여 힐끔 어린 신돈을 본다. 정신없이 밥을 입에 처넣다 씨익 웃는 어린 신돈. 어머니:(아파서 고개 돌리며) 죽었소 하고 살아 이놈아. 아니 네 놈은 산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여 마른 장작을 마루 쑤셔 넣는 어머니. 연기에 눈물이 난다는 듯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마을 가까운 길(저녁무렵) 말없이 가는 신돈. 그 눈치를 힐끔힐끔 보는 원현. 원현: 가만 생각해보니 편조스님 말씀이 다 옳습니다. 길가에 누워있는 돌멩이한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피해 다니지 않고 무심히 밟고 걷어차는 사람들이 잘못된 거지요 신돈:..... 원현:(얼굴 들여다보며)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편조스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어린애처럼 헤헤 웃어보이는 원현. 갑자기 신돈이 원현의 팔을 나꿔채 길가 구덩이로 몸을 던진다. 마을 쪽에서 말이 달려온다. 구덩이에 엎드려 보는 신돈과 원현. 자세히 보니 웬 사내가 도망쳐오고 있고, 그 뒤를 기마병이 뒤쫓고 있다. 도망치는 사내에게 가까이오자 칼을 빼드는 기마병. 순간 신돈이 원현의 머리를 손으로 눌러 땅에 처박는다. 버둥거리는 원현. 길쪽을 바라보는 신돈. 기마병의 칼이 사내의 허리를 후려친다. 꼬꾸라지는 사내. 신돈:(눈 지그시 감으며) 나무관세음보살 다시 눈을 떠서 본다. 기마병이 시체를 줄에 묶어 마을 쪽으로 끌고 간다. 다시 눈 감는 신돈. 버둥거리는 원현. 겨우 신돈의 손을 벗어나 고개를 들이 길쪽을 본다. 기마병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묻듯이 신돈을 바라보는 원현. 마을 쪽을 바라보는 신돈의 눈가에 눈물 한방울이 반짝인다. #어느 마을(밤) 신돈과 원현이 주위를 살피며 온다. 제법 번듯한 기와집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가까이 가는 두 사람. 신돈:..... 그 시선에 대문 앞에 거적을 덮어 놓은 사내의 시신. 안에서 군졸들이 세간 등을 밖으로 끄집어내다 내던진다. 안에서 달려나온 노파가 세간을 움켜쥐고 운다. 군졸 하나가 노파를 끌 듯이 잡아쥐고 안으로 들어간다. 혀를 차는 농부. 원현:(농부에게) 무슨 일입니까 농부:(힐끔 보고 입 다문다) 원현: 무슨 일로 이런 곤욕을 당하고 있는지 농부:(안의 눈치를 보고) 허씨네 큰 딸이 올 해 딱 열 여덟이오 원현:....그런데요 농부: 그 딸이 원나라에 바칠 공녀로 뽑혔는데 이미 정혼한 사람이 있었소. 그래 두 사람이 도망을 쳤는데..... 손으로 거적에 덮힌 사내를 가리킨다. 거적 밖으로 삐져나온 발. 원현: 나무관세음보살.....(중얼거린다) 농부: 행세께나 하는 허씨네가 이 모양이니..... 혀를 끌끌 차는 농부. 마을 어귀에서 소란이 일어난다. 원현, 본다. 기마병들이 여자 하나를 줄에 묶어서 끌고 온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여자가 꼬꾸라지자 그냥 끌고 온다. 원현, 불끈해서 나서려 한다. 그 팔을 붙잡는 손. 신돈: 가세 원현: 연약한 여자를 신돈: 상관 말고 가세 신돈이 원현의 팔을 잡아끈다. 그 손을 뿌리치고 눈물을 닦는 원현. 가까이 오는 기마병들. 안에서 어머니인 듯한 여자가 달려나와 딸에게 달려간다. 어린 딸을 부둥켜 안고 울부짖는다. 원현: 나무관세음보살 신돈:(다시 팔 잡으며) 아무리 염불을 외워봐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걸 두고 공염불이라고 하는 걸세 원현: 세상을 뒤집어 엎겠다더니 그거야 말로 공염불이었습니까 신돈: 대갓집 사병들에게 쫓기는 신세에 관군까지 건드려서 어쩌려구 안에서 대장인 듯한 자가 나온다. 딸의 아버지를 끌고 나오는 군졸들. 대장:(아버지에게) 이 놈. 저 년이 바로 니 딸 년이렸다. 국명을 어기고 딸을 숨긴 죄가 무엇인 줄 알렸다 칼을 빼서 단숨에 아버지를 친다. 어머니: 영감 딸을 끌어안고 울던 어머니가 달려온다. 대장의 칼이 또 한번 번뜩인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어머니. 원현: 이런 죽일 놈들 신돈이 잡을 새도 없이 달려 나가는 원현. 원현: 이보시오. 죄를 지어도 엄연히 법이 있거늘 불문곡직 사람을 죽이는 법이 어디 있소 대장:(훑어보며) 스님도 한 패거리요 원현:..... 움칠하는 원현. 대장:(군졸들에게) 계집을 풀어주고 말에 태워라. 원나라 황제에게 바칠 귀한 몸이니 조심해서 다루거라 웃는 대장. 군졸들이 딸의 결박을 풀어준다. 딸: 아버님 부모의 시신을 향해 달려온다. 군졸들이 딸을 나꿔채 말에 태운다. 울부짖는 딸. 대장: 집에 불을 질러라 군졸들이 안으로 달려가 불을 지르기 시작한다. 말에 올라타는 대장. 말 위에 타고 있던 딸이 허리를 잡고 있는 군졸의 팔을 물어 뜯는다. 비명을 지르며 딸을 놓는 군졸. 말에서 뛰어내려 부모에게 달려가는 딸. 말 위의 대장이 칼을 빼들고 딸에게 달려온다. 원현: 멈추시오 대장을 향해 달려가는 원현. 대장, 귀찮은 듯 원현을 향해 칼을 내려친다. 순간 신돈이 허공을 날아오르며 마상의 대장을 걷어찬다. 말에서 떨어져 나뒹구는 대장. 군졸들이 신돈에게 달려든다. 신돈의 몸이 허공을 날아다닌다. 놀란 원현의 눈. 신돈: 뭘 하고 있나. 어서 도망치지 않고 원현:..... 정신이 나서 딸의 손을 잡고 도망치려고 한다. 그 손 뿌리치고 부모의 시신으로 달려가는 딸. 다시 잡는 원현. 딸: 내버려두세요. 내가 살아서 뭐하겠습니까. 죽게 내버려두세요 부모의 시신을 붙잡고 통곡하는 딸. 신돈: 빨리 도망치래두 다급한 신돈의 목소리.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원현. 군졸 하나가 달려오더니 울부짖는 딸을 향해 창을 꽂아 넣는다. 순간 군졸의 목에 날아와 박히는 표창. 목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군졸. 두 손에 표창을 뽑아든 신돈. 대장: 가짜 중이다. 저 놈들을 죽여라 겁에 질려 멈칫거리는 군졸들. 대장: 이 놈들이 군졸들을 후려치는 대장. 비로소 우르르 신돈에게 달려드는 군졸들. 신돈의 표창이 서너 개 날아간다. 팔과 다리에 맞고 꼬꾸라지는 군졸들. 원현:........ 정신이 난다. 원현: 우선 살고 봅시다. 낭자 허씨의 손을 잡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여전히 울부짖는 딸. 그 뒤를 쫓는 군졸들. 표창이 날아와 다리에 꽂힌다. 그 틈을 타서 멀리 도망치는 원현. #숲 속(밤) 허씨의 손을 잡고 도망쳐 오는 원현. 숨이 가쁘다. 허씨가 주저앉는다. 원현:.... 뒤돌아본다. 조용하다. 원현도 털썩 주저앉는다. 곧추 세운 무릎에 얼굴 묻고 울기 시작하는 원현. 그런 원현을 바라보는 허씨. 허씨:..... 원현:(울며) 죽었을 겁니다. 편조스님은 신돈의 웃음소리. 놀래서 고개 드는 원현. 맞은 편 언덕 위에 신돈이 서있다. 원현: 편조스님 신돈: 왜 이렇게 늦었나. 진즉에 와서 자넬 기다리고 있었는데 원현: 정말 편조스님이 맞습니까 반가워서 달려가 신돈을 부둥켜안고 우는 원현. #어느 길(새벽) 신돈이 주위를 살피며 온다. 뒤떨어져 원현이 실신한 허씨를 업고 온다. 원현: 정신 차리세요 낭자 축 늘어진 허씨. 원현: 편조스님.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말없이 앞서가는 신돈. 할 수 없이 허씨를 추켜 업고 부지런히 따라가는 원현. 원현:(울먹이듯) 미안합니다 편조스님. 나 때문에 살생을 하셨으니 대꾸없이 주위만 살피며 앞서가는 신돈의 뒷모습. 원현: 살생은 제가 한 겁니다. 편조스님은 죄가 없으세요 눈물을 흘리며 신돈을 따라가는 원현. #연경의 숲 나팔소리. 말 달리는 보탑실리(훗날의 노국공주). 마상에서 나팔을 불어대는 나팔수들. 깃발을 펄럭이며 한 무리의 사냥마들이 달려간다. 숲 사이로 질주하며 화살을 겨누는 보탑실리. 화살이 시위를 떠난다. 나무 사이로 날아가는 화살. 사슴이 서있다. 그 눈망울. 보탑실 리가 쏜 화살이 사슴에 적중하려는 순간, 그 화살을 내리치는 칼. 두동강이 나버리는 화살. 나무사이로 보탑실리가 달려온다. 도망치고 있는 사슴. 다시 화살을 뽑아 겨누는 보탑실리. 순간 멈칫하며 말을 세운다. 말발굽으로 허공을 치며 솟아올랐다 멈추는 보탑실리의 말. 사슴이 있던 자리에 공민왕이 말을 타고 서있다. 노국공주:(몽골어로) 누구냐. 내가 누군 줄 알고 사냥을 방해하는 거냐 공민왕:.......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보탑실리를 바라보다 말머리를 돌려 숲 속으로 사라지는 공민왕. 화가 나서 노려보는 보탑실리. 쿤란태자가 시종들을 데리고 달려온다. 쿤란태자:(웃으며 몽골어로) 보탑실리의 화살이 빗나갈 때도 있나 노국공주:..... 여전히 분해서 공민왕이 사라진 숲을 바라보는 보탑실리. 쿤란태자가 두 조각이 난 화살을 발견한다. 쿤란태자:(웃으며) 보탑실리의 사냥 솜씨를 시기하는 자가 있었나보군. 이번 대회 승자는 나인 것 같소 웃으며 사냥한 새들을 들어 올려 보이는 쿤란태자. #사냥터의 야영지 몽골식 텐트인 ‘게르’가 세워져 있다. 공민왕의 말을 잡아주는 안도치. 안도치: 이번에도 한 마리도 못잡으셨습니까 공민왕: 재미삼아 생명을 죽일 순 없지 안도치: 이번 사냥엔 황제 폐하를 뫼시고 황후마마께서도 참석을 하셨습니다. 대군께서 등수에 드시면 기황후와 자연스럽게 대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옵니까 말없이 게르로 향하는 공민왕. 아쉬운 안도치. 말들이 달려온다. 돌아보는 공민왕. 쿤란태자와 보탑실 리가 말에 타고 있다. 공민왕을 지나쳐 가는 듯하더니 보탑실 리가 말을 돌려 공민왕에게 온다. 노국공주:(몽골어) 또 한번 내 사냥을 방해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요 공민왕이 대꾸할 시각도 없이 말머리를 돌려 달려가는 보탑실리. 안도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공민왕: 오랑캐의 여자라니 내뱉고 게르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공민왕. 안도치:.... 멀어져가고 있는 보탑실리를 바라본다. #원 순제의 게르 안 주연이 벌어졌다. 원순제: 위안, 섭섭하겠소. 항상 일 등을 하던 보탑실리 공주가 이번엔 빈 손으로 돌아왔으니 위안: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번이 보탑실리의 마지막 사냥이라 일등을 했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기황후: 마지막 사냥이라니오 위안: 올 해가 지나면 보탑실리의 나이가 열 여덟이 되옵니다. 혼기가 됐으니 사냥은 그만 두어야지요 원순제: 저런. 쿤란이 호적수를 잃었구나 노국공주: 시집을 가도 사냥은 계속할 겁니다 쿤란태자: 나하고 끝까지 맞서 보겠다는 겁니까 웃음이 터진다. 기황후: 사냥도 좋지만 좋은 배필을 만나는 게 여자에겐 더 중요하지 다시 웃음이 터진다. 원순제: 태자야 쿤란태자: 예, 폐하 원순제: 아무래도 네 배필은 종마 같은 억센 여자가 되겠다 다시 웃음이 터진다. 쿤란태자는 보탑실리를 향해 미소 짓고, 보탑실리도 비로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기황후:...... 웃음 속에 가시가 박혔다. 그런 기황후와 그 옆에 앉은 ‘아이시리다라’(기황후의 아들, 훗날의 황태자, 9세)를 번갈아보는 박불화. #연경의 공민왕의 처소. 뜰(밤) 들어오는 공민왕. 안도치:(다급하게 따라오며) 대군마님께서는 오늘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보탑실리 공주는 쿤란태자의 배필감이옵니다. 그런 공주의 비위를 건드리셨으니 공민왕:(버럭) 죄없는 사슴이 재미삼아 쏘는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하질 않느냐 안도치: 하오나 대군마님 공민왕: 그게 비위를 건드렸다면 날 죽이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해. 하긴 힘없는 사슴을 사냥하는 것보다 이름없는 변방의 왕족을 사냥하는 게 훨씬 더 재미가 있겠지 안으로 들어가는 공민왕. 안도치: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대군마님 안타까운 -. #동. 방 안(밤) 문을 박차듯 열고 들어오는 공민왕. 공민왕:(삿대질 하는 손짓하며) 더는 나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했잖소. 날 따라다녀 봤자 부귀영화는커녕 평생 고생만 하다 말 것이니 개경으로 돌아가 기철의 비위나 맞춰보라구 김용: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대군 조일신: 개경에서 익재대감이 오셨습니다 공민왕:...... 정세운: 국왕전하의 환후가 위중하다고 하옵나이다 공민왕: 조카의 병이 깊으니 기뻐하라 정세운: 그런 뜻이 아니옵고 공민왕: 내 형님께서 두 아드님을 두셨다는 걸 잊었소이까. 큰 놈이 죽으면 작은 놈이 뒤를 잇겠지 탁자에 놓인 술병을 집어든다. 김용:(얼른 나서며) 기철이 이번엔 대군을 밀고 있다고 합니다 공민왕:(번쩍) 조일신: 기철이 대군을 밀면 기황후의 마음도 대군 쪽으로 기울 것입니다 공민왕:(의자에 털썩 앉으며) 고려의 국왕이라...... 정세운:(울며)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셨사옵니까 조일신: 경하드리옵니다 대군마님 공민왕:......(이지러진 미소 떠오르더니) 개경으로 돌아가 국왕이 된다고 뭐가 달라질까.....기황후의 눈치를 보며 사는 거나 그 오래비인 기철의 눈치를 보고 사는 거나..... 조일신:(벅차게) 대군마님께서는 고려의 국왕이 되시는 것이옵니다 공민왕: 허수아비야. 여기서나 거기서나, 허수아비야. 차라리 원의 볼모로 사는 게 낫지. 지금은 임금이 아니고 볼모니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살지만 명색이 왕인 자가 기철 같은 자의 눈치를 살피며 살 수는 없잖은가 김용: 저희가 있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힘을 합치면 기철 같은 자 하나 누르지 못하겠사옵니까 공민왕:(버럭) 기철의 뒤에는 기황후가 있질 않느냐 (미친 듯이) 원의 공녀로 바쳐진 고려의 천한 계집이 원의 황후가 되어 제 조국을 발톱의 때만큼도 귀히 여기질 않느니라. 그런 계집을 상전으로 모시고 사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낫지 #기황후의 전각. 뜰(밤) 박불화: 발 밑을 조심하십시오 익재대감 조심스럽게 이제현을 안내하는 박불화. 박불화: 등불을 밝히고 싶으나 워낙 야심한 시각인지라...... 생글생글 웃으며, 붉은 함을 두 손으로 안고 있는 이제현을 전각으로 모시는 박불화. 박불화:(멈추고) 황후마마. 소인 자정원사이옵나이다 안에서 거문고 소리만. 박불화: 드시지요 익재대감 문을 여는 박불화. #동. 안(밤) 들어오는 이제현. 기황후가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눕듯이 앉아있고, 시녀들이 기황후의 손톱과 발톱을 다듬고 있다. 고려복색을 한 시녀가 거문고를 켜고 있다. 시녀 하나가 양귀비 꽃을 짓이겨 진을 내고 있다. 이제현:..... 기황후를 바라본다. 약에 취한 듯 몽롱한 기황후. 박불화: 황후마마. 고려 대신 이제현이 마마를 뵈러 먼 길을 왔사옵니다 기황후:..... 이제현을 바라보는 몽롱한 시선. 가만히 허리를 굽히는 이제현. 기황후: 이 약을 한번 드셔 보시겠소 하얀 액체가 담긴 작은 잔을 내민다. 기황후: 라마승들이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묘약입니다 (살포시 웃으며) 냄새만 맡아도 극락세계에 빠져듭니다그려 손 끝으로 잔에 담긴 액체를 찍어 혀에 묻히더니 깔깔 웃으며 길게 누워버리는 기황후. 박불화:..... 난처한 듯 이제현을 바라본다. 붉은 함을 내려 놓는 이제현. 이제현: 강릉대군의 어머니가 되시는 홍씨 부인의 선물입니다 함의 뚜껑을 여는 이제현. 패물들이 번쩍인다. #공민왕의 처소. 뜰(밤) 조일신: 실성을 했나. 고려의 국왕 자리가 저절로 굴러 들어오게 생겼는데 원의 볼모로 죽겠다니 정세운: 이 사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김용: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방을 향해 침을 탁 뱉는다. 불꺼진 방. #동. 방 안(밤) 어둠 속에 앉아있는 공민왕. 공민왕:.....어머니.....욕심이 과하십니다. 어린 조카의 죽음을 기뻐하라니오.....예. 어머니께선 춤이라도 추시겠지요 광인처럼 웃어대는 공민왕. #기황후의 전각. 안(밤) 기황후:....... 눈을 가늘게 뜨더니 박불화를 바라본다. 박불화: 예, 황후마마 기황후: 갔느냐 박불화: 강릉대군의 어미가 보낸 패물을 두고 갔습니다. 황실에서도 보기 드문 진귀한 패물들이옵니다 기황후:......그 자리를 달라? 박불화:.....(마른침) 기황후: 하긴 돈이 많이 들겠지. 쿤란태자 대신 내 아들을 그 자리에 앉히려면 약에 취해 빙긋이 웃으며 돌아눕는 기황후. 등을 돌린 채 쿠득쿠득 웃어대는 기황후. #고려의 다른 마을 말을 달려오는 군졸들. 여기저기 방을 붙인다. 신돈과 원현, 여인의 화상이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신돈:..... 숨어서 방문을 바라보는 신돈. #산길 자꾸만 넘어지며 따라오는 허씨의 딸. 원현:(안쓰러워서) 편조스님. 좀 천천히 가든지 평지로 가든지 하세요. 이 낭자분이 힘에 부치나 봅니다 대꾸없이 훨훨 앞서가는 신돈. #다른 산 길 가파른 산 길을 기어오르다시피 하는 허씨의 딸. 앞서가던 원현이 딱해서 손을 내민다. 얼른 앞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어서 감추는 허씨의 딸. 무안해서 얼른 고개 돌리고 앞서가는 원현. 뒤에서 신음소리. 허씨의 딸이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원현, 황급히 주저앉아 미끄러져 내려간다. 겨우 허씨의 딸의 손을 잡아 안전한 곳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곤 얼른 손을 치운다. 원현:.... 괜찮냐고 눈으로 묻는다. 비로소 울음이 터지듯 미소 짓는 허씨의 딸. #어느 산 속(밤) 모닥불이 꺼져가고 있다. 추운 듯 웅크리고 잠이 든 허씨의 딸. 배를 두 손으로 감싸쥐고 있다. 신돈:.... 어둠 속에서 그런 허씨의 딸을 노려보듯 보고 있다. 원현이 잠에서 깨서 부스스 일어나더니 뭔가 생각난 듯 신돈에게 온다. 원현: 편조스님, 어떡하죠. 내일이면 개태사에 도착할 텐데 신돈:...... 원현:(허씨의 딸 눈짓 하며) 절 안에까지 데려갈 순 없잖습니까 신돈: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이제 와서 버리란 말인가 원현: 그런 게 아니라 큰스님께서 받아줄 리가 없잖습니까 신돈:...... 허씨의 딸을 바라본다. 신음소리. 배를 움켜쥐고 고통을 참는 모습이다. 신돈: 나무관세음...... 중얼거린다. #개태사. 마당 지팡이로 신돈의 어깨를 후려치는 큰스님. 큰스님: 이놈. 개경에 올라간 지가 얼마냐. 그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돌아온 거야 꼼짝 않고 맞고 있는 신돈. 큰스님: 네 이놈. 내 이럴 줄 알았다. 니 놈이 사고를 칠까봐 원현을 달려서 보냈더니 순진한 원현이마저 때를 묻혀와 마구 때린다. 원현:(떨어져 신돈이 맞을 때마다 찔끔거리다) 큰스님. 편조스님 때문에 늦은 게 아닙니다. 제가 배탈이 나는 바람에 큰스님:(원현에게) 입 다물고 있지 못해. 니 놈이 변명을 해준다고 내가 속을 것 같으냐 또 다시 신돈을 때린다. 그 때마다 찔끔거리는 원현. 덕운이 장작을 한아름 안고 다가온다. 덕운: 저런 미련한 놈. 서너 대 맞으면 죽는 시늉을 해야지. 그래야 큰 스님이 매를 멈출 거 아닌가 혀를 차고 가버리는 덕운. 신돈을 때리는 큰스님의 힘이 점점 빠진다. 원현:(보다 못해) 편조스님. 잘못했다고 비세요. 하루 종일 맞고 계실 겁니까 신돈:.... 점점 힘이 빠지면서도 지팡이로 신돈의 어깨를 내려치는 큰스님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쿡쿡 웃는다. 큰스님: 이 놈 보게. 웃고 있질 않나 신돈:(웃음 참는) 큰스님: 너 이놈. 얼굴 좀 들어봐라 신돈:.....(얼굴 든다. 웃음이 그쳤다) 큰스님: 너 이놈. 어째서 웃느냐 신돈: 아직도 힘이 장사시니 좋아서 웃었습니다 큰스님: 옳거니. 니 놈이 매를 청하는구나 두 손에 침 뱉고 힘주어 지팽이 잡아쥐고 신돈을 다시 내려치는 큰스님. 싱글싱글 웃으며 매를 맞고 있는 신돈. #산 길 큰스님을 업고 올라가는 신돈. #산의 중간 길 큰스님을 업고 올라가는 신돈. #산의 정상 큰스님을 업고 올라오는 신돈. 큰스님: 됐다 (신돈의 어깨 툭툭 치며) 수고했다 큰스님을 내려놓는다. 산 아래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산 중턱의 개태사의 모습. 큰스님: 그래 뭘 보고 왔느냐 신돈:...... 큰스님: 지옥이더냐 신돈: 아닙니다 큰스님 큰스님: 그럼 신돈:...... 큰스님: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보고 싶다고 조르더니 뭘 보고 온 게야 신돈:..... 산만을 바라보는 신돈. 그 아련한 눈길. #신돈의 의식 낙타가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고 있다. 바라보는 신돈. 낙타의 눈. 바라보는 신돈. 이윽고 거대한 몸집을 일으켜 세운 낙타가 푸드득거리며 하늘을 향해 머리를 흔든다. #산의 정상 신돈:.... 문득 떠오르는 미소. <3회 끝>